[기자25시]게임사 그리고 문화 아이콘

장면1.

수백명이 애너하임 컨벤션센터 앞에서 길게 줄을 늘어서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행사 개장 시간 이전부터 나와 자리를 잡고 오랫동안 기다렸으나 피곤한 기색도 전혀 없다. 앞뒤 사람과 웃고 떠들면서 곧 시작될 행사에 대한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을 뿐이다.

장면2.

형형색색의 코스프레 복장을 한 이들이 사진기 앞에서 연신 포즈를 바꿔가면서 자신이 피사체가 되는 것을 즐긴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나 찍히는 사람이나 모두 다 감독이고 배우다. 코스프레 모델들은 모두 행사 주최측이 고용한 인력이 아니라 일반 게이머들이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서 개최된 블리자드의 팬파티인 ‘블리즈콘’은 일개 게임사의 집안 잔치였으나 전세계의 블리자드 게임을 좋아하는 이들의 지구촌 잔치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세계에서 몰려든 게이머들이 손님이 아니라 주인으로 참여해 스스로의 블리자드 스타일을 만들어내면서 즐겼다. 게이머들에게 블리자드는 단순히 ‘게임 하나 만큼은 잘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문화 아이콘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 행사에 참가한 게이머들은 우리나라 돈으로 10만여원에 해당하는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오랜 기다림 등의 불편을 기꺼이 감수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일개 게임업체의 행사에 게이머들이 그정도의 돈을 내고 선뜻 참석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특히 블리자드의 로고가 들어간 값싼 티셔츠 하나를 구하기 위해 행사장 내 마련된 매장 앞에서 몇십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게이머들의 모습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블리즈콘’에서는 어떻게 이 같은 일들이 가능했을까. 특이한 취향(?)을 가진 이들이 많은 미국 땅에서 벌어진 행사였기 때문일까. 아마도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최고의 게임으로 보답하는 게임사, 게임을 단순한 유희가 아닌 문화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게이머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번 행사를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됐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게임업체들의 행사는 경비의 대부분을 게임업체가 지불한다. 값비싼 선물과 음식까지도. 국내 행사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많은 게이머가 있지만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아직 게임산업의 역사가 짧은 탓도 있겠지만 세계적인 게임 강국을 자처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이름 하나만으로도 문화 아이콘이 되는 게임사가 하나쯤은 나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