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기자들의 CES

김상룡

저는 지금 CES 취재를 위해 동료 기자 2명과 함께 라스베이거스에 와 있습니다. 이곳 전시장에는 2500여개 기업이 만든 수백만개의 정보 및 통신 관련 제품이 있습니다. 모두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제품이지요.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제품들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전시회에 있는 모든 제품은 해당 회사에서 적어도 수개월간 전문가들이 밤잠을 설쳐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찮은 제품이 아닙니다. 중소기업 제품 전시관을 둘러보다가 문득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삿거리’만을 찾고 있는 ‘하이에나’ 같은 저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곳 프레스센터에는 무려 2000여명의 취재진이 늘 북적대고 있습니다. CES를 자주 취재하다 보니, 익숙해진 일본 기자 얼굴도 눈에 띕니다. 밤낮이 뒤바뀐 생활에 얼굴에 피곤이 가득합니다. 자리가 모자라 서서 기사를 쓰는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프레스센터에는 늘 케첩 냄새가 진동합니다. 샌드위치로 늦은 끼니를 해결하는 기자들 때문입니다.

 오늘은 김쌍수 LG전자 부회장과 기자간담회가 있었습니다. 미리 가서 아는 임원들에게 취재 정보를 귀동냥하고 있는데, 40세쯤 되어 보이는 외국인 한명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여기가 LG전자 브리핑 장소냐” “한국말로만 진행되느냐”를 묻더군요. “그렇다”고 대답하니까, 아쉬운 표정을 짓고 돌아서더군요. 그 역시 기자였습니다. 이른바 그는 ‘맨땅에 헤딩하기’를 실천하는 중이었습니다.

 제가 CES를 처음 취재한 것은 93년쯤인 것 같습니다. 그때는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들고 일본과 미국 기업 제품을 열심히 취재했습니다. MS·인텔·필립스·소니·파나소닉·도시바·후지쯔·JVC 등은 우리 기업의 모범답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 기업만 둘러보면 신기술 동향이 거의 파악됐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최근에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하던 짓을 중국·일본·미국 기자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 기업 제품을 참 열심히도 찍어댑니다. 웃음도 나지만, 한편으로는 겁도 납니다. 불과 10년 만에 세상을 바꾼 우리 기업처럼, 그들도 노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나저나 세상 참 많이 변했습니다.

 라스베이거스(미국)=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