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 갇혀 나홀로 연구에 몰두해온 정부출연연구소가 화려한 변신에 나섰다.
기술 융합과 개방형 혁신을 토대로 한 협력과 국제화가 가속화하는 시대 변화를 고려할 때 출연연의 개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정부가 출연연 선진화 방안을 마련하는 가운데 출연연 내부의 자발적인 개혁 노력은 연구개발(R&D) 선진화 시스템 정착의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지난해부터 가시화한 출연연 변화의 키워드는 △기술사업화 △대형 융합 연구 과제 선택과 집중 △국제 협력 가속화 △우수 인력 풀 강화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기술사업화’는 그동안 정부 출연연이 양적인 성과물을 무수히 쏟아냈지만 이를 실질적인 사업 성과로 연계하는 데 미흡했다. 지난 2008년 기준으로 출연연의 연구개발 투자 생산성은 3.68%에 머물렀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원장 한홍택)은 아예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기관의 핵심 모토로 삼아 기술사업화가 가능한 ‘긴 호흡’의 연구를 한다는 새로운 비전을 수립했다.
올해 설립 20주년을 맞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원장 나경환)도 세계 3대 실용화 연구기관으로 성장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도 이를 개선하기 위해 최근 ‘출연연 연구성과 확산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공동 추진한다고 발표하고 출연연의 R&D 투자생산성을 오는 2015년까지 선진국 수준인 7%대로 끌어올린다는 목표치를 제시했다.
전 세계적으로 기술 융합 트렌드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출연연들은 IT·BT·NT 등 다양한 기술을 융합한 대형 과제 연구에도 초점을 맞췄다.
화학 기반 융·복합 기술 선도 등을 4대 중점 연구 사업으로 추진 중인 한국화학연구원(원장 오헌승)은 그린화학연구단, 화학소재연구단, 신물질연구단 3개 전문 연구단을 운영하면서 올해 1200억원을 집중 투입한다.
그동안 출연연의 약한 고리로 지적돼온 국제 협력도 하나둘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해외 유수 연구기관과의 긴밀한 협력 사례가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세계수준연구기관(WCI)처럼 아예 해외 우수 석학들이 주축이 된 국내 연구 거점 마련도 올해 들어 본격화했다.
정부 출연연을 관리하는 기초기술연구회(이사장 민동필)와 산업기술연구회(이사장 한욱)의 개혁에도 속도가 붙었다.
기초기술연구회는 최근 출연연들에 대한 국제 기준 평가를 수행한 데 이어 ‘국가어젠다과제(NAP:National Agenda Project)’로 출연연 선진화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NAP는 국가가 고민하는 경제·사회 문제를 출연연의 연구 성과물로 해결한다는 취지 아래 6개 어젠다 부문 20개 과제를 발굴했다.
NAP 과제는 중간평가를 거쳐 총 6년 동안 지원되는데 연구회와 연구주관기관의 매칭펀드로 연간 20억∼40억원의 대규모로 진행된다.
산업기술연구회도 소속 13개 출연연별로 2∼3개씩 선정한 대형 과제를 모두 모아 각계 전문가와 예산 당국이 참여해 내년 예산 전략을 짜는 초대형 워크숍을 내달 여는 등 파격적인 시도에 나섰다. 산기연은 정부 R&D 성과물의 경진대회를 통해 상용화 결과 순위까지 매겨보기로 했다.
하지만 출연연들의 개혁이 이제 시작인 만큼 보완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특히 최근 정부가 출연연 선진화 방안을 마무리짓는 단계에서 출연연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10년간 네 차례나 출연연을 흔들어 놓았지만 여전히 실질적인 개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출연연들은 △대형 과제를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여건 조성 △실질적인 국제 협력 △우수 인력의 흡수 장치 마련 △국가 연구과제의 효율적인 배분 등을 개선 과제로 꼽았다.
민동필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은 “우리 정부의 출연연에 대한 R&D 예산은 결코 적지 않지만 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쓰느냐가 관건”이라며 “또 우수한 젊은 인재를 출연연으로 유도하고 연구자들이 융합 분야의 장기 과제를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숙제”라고 강조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