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포커스]적정기술

과학기술의 지속적 발전은 인류 삶을 풍족하게 만들었다. 조명기술로 밤을 밝힐 수 있고 에어컨과 히터는 날씨에 상관없이 쾌적한 실내 생활을 영위토록 해준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패드(태블릿PC)로 초고속 인터넷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도 있다.

[사이언스 포커스]적정기술

하지만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이 같은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세계 인구 약 70억의 절반 이상이 이 같은 기술 기반 물질적 풍요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최신 스마트폰, 전기 자동차와 같이 선진국 소비자나 개도국 부유층을 위한 첨단기술이 아닌 저개발 국가복지 증진에 기여하는 기술은 없을까. 여기에 대한 해답이 바로 적정기술이다.

◇적정기술이란=적정기술 기본개념은 오래 전에 나왔다. 20세기 초 인도 독립운동가 마하트마 간디가 시초다. 이후 이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사람은 영국 경제학자 슈마허다.

슈마허는 1973년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저서에서 `중간기술` 필요성을 설명했다. 중간기술은 지식을 활용하고 분산화를 유도하며 생태계 법칙과 공존하면서 희소한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중간기술 개발그룹(ITDG)을 설립해 중간기술 확산에 매진했다. 이후 ITDG에서 중간기술이 첨단기술과 비교되는 것을 피하고 기술에 정치·사회적 의미를 포함시키기 위해 중간기술을 `적정기술`로 재정의했으며 이것이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적정기술은 선진국보다 개발도상국에 필요하다. 영국 프리플레이에너지사가 개발해 아프리카 주민들에게 제공한 라디오 `라이프라인`이 대표 사례다. 낮 동안 태양전지를 통해 모은 전기로 밤에 전등을 밝히거나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에서도 물을 정수할 수 있는 개인휴대용 정수기도 적정기술이다.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기 위해 개발한 적정기술이 반대로 선진국에서 인기를 끈 경우도 있다. 고다사에서 만든 태양전지 충전기는 제3세계 보청기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 개발됐는데 간편한 사용법과 반영구적 특성으로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에 보급되고 있다. 아프리카 학생들을 위해 제작됐던 100달러 노트북은 넷북이나 스마트패그의 기원이다. 태양전지를 활용한 소규모 발전시설이나 분뇨를 퇴비로 활용하는 생태화장실도 유사한 사례다.

◇IT발전이 적정기술 부각시켜=적정기술이 부각된 데는 IT산업 발전 덕이 컸다.

적정기술 제품을 개발하려면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과학적 이론이나 최첨단 기술보다는, 저렴하고 특정 환경에 맞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또 적정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따라서 인터넷으로 세계 곳곳이 연결되고 스마트폰, SNS 사용이 늘어나는 지금이 적정기술 확산의 좋은 기회다. 적정기술 개발에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을 활용하거나 적정기술 보급을 위해 웹 플랫폼을 구축할 수도 있다. 이미 적정기술 거래 사이트인 코퍼닉(Kopernik)는 웹을 통해 적정기술과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각국정부 활동 활발=적정기술이 등장한 이후 MDG, 미국 NCAT와 같이 각국 정부와 NGO 등을 중심으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MIT, 스탠퍼드와 같은 학교에서도 강좌를 열어 학생들에게 적정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ITDG가 새롭게 이름을 바꾼 프랙티컬 엑션, IDE, D-REV 등 다수 전문기관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지난해 말 `R&D 36.5℃ 전략`에서 적정기술 개발·보급 방안을 발표했다. 지식경제부는 저개발국 국민을 위한 적정기술 개발·보급 확대와 이를 활용한 저개발국과의 산업자원 협력 활성화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적정기술운동을 펼치는 `나눔과 기술`같은 조직은 한동대학교, 한밭대학교와 연계해 공과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적정기술 디자인 경진대회를 개최한다. 이 프로그램은 `국경없는 과학기술협회` 등을 통해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수도권 대학에도 확산될 전망이다. 민간부문에서도 학계와 NGO를 중심으로 적정기술 관련 포럼과 콘퍼런스가 개최되고 있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