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사건_085] 뒤늦은 아이폰 열풍, 한반도를 강타하다 <2009년 11월>

글자 작게 글자 크게 인쇄하기

전화기 역사를 유선과 무선으로 나눈다면 휴대폰 산업은 아이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그만큼 아이폰이 가져온 변화가 크다는 의미다. 아이폰은 2007년 6월 29일 미국에서 처음 출시됐다. 우리나라에 들여온 것은 2년여 뒤인 2009년 11월. 아이폰이 이동통신시장의 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위협적 존재라는 것을 알았던 사업자들이 도입을 꺼렸기 때문이다.

[100대 사건_085] 뒤늦은 아이폰 열풍, 한반도를 강타하다 <2009년 11월>
2009년 11월 우리나라에 첫 출시된 `아이폰3GS`
<2009년 11월 우리나라에 첫 출시된 `아이폰3GS`>

◇아이폰 한국 상륙 왜 늦었나=휴대폰을 구입하려면 통상 이동통신사 대리점을 거쳐야 한다. 거리에서 주운 휴대폰이나 해외에서 들여온 휴대폰은 바로 사용할 수 없다. 이통사가 휴대폰을 제조사에서 구매해서 사용자에게 재판매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휴대폰을 싸게, 심지어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이통사가 제조사에서 휴대폰을 구매, 보조금을 지원해서 공급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비용은 이용자들에게 통신요금 등에 포함, 부과한다. 문제는 이것이 발목을 잡아 KT에서 휴대폰을 구입하면 KT 서비스만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제약은 이용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했다. 반면에 유럽이나 미국은 다르다. PC를 구매하듯 휴대폰을 구매해서 통신사를 골라 USIM을 사서 사용하면 된다. 우리나라도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제약이 많아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폰은 이런 폐쇄적인 한국 통신환경을 변화시켰다. 2009년 11월 공식 출시 이전부터 해외에서 구매해 아이폰이나 HTC의 G1 등을 사용하던 몇몇 이용자들의 불만이 있었지만 폭발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폰 출시 이후 스마트폰의 유용함과 사용성을 알게 된 이용자들은 그간 누릴 수 없었던 통신 자유를 강력히 요구하게 됐고 이는 규제 없는 통신환경을 만드는 촉매제가 됐다.

◇KT의 용단=아이폰은 KT를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일본은 소프트뱅크, 미국은 AT&T가 아이폰을 처음으로 출시한 이통사다. 이들의 특징은 자국에서 2위 이통사라는 점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폰은 기존 통신사의 기득권을 와해시키기 때문에 1위 사업자가 굳이 선택할 이유가 없다. 2인자는 승자독식이라는 네트워크 사업에서 1인자를 위협해 `게임의 법칙`을 깨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KT는 그것을 택한 것이다.

KT는 2008년부터 아이폰을 국내에 들여오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노력은 한국 휴대폰 점유율이 50% 이상이었던 삼성전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KT는 이런 한계를 무릅쓰고 용단을 내렸다. 실제로 KT는 아이폰 출시 초반 옴니아2, 갤럭시A, 갤럭시S, 갤럭시탭 등은 공급하지 못했다.

아이폰은 KT에 굴욕을 주었다. 아이폰 이전에 휴대폰을 판매할 때는 이통사와 제조사 양쪽이 모두 보조금을 부담했다. 하지만 아이폰은 보조금을 공동 분담하지 않았다. 판매 가격 역시 애플의 주장이 더 크게 작용한다. 과거 통신사가 가지고 있던 가격 결정권과 영향력이 약화된 것이다. 아이폰에 기본적으로 탑재되는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의견도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심지어 마케팅을 할 때 광고 전단과 CF도 애플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국 이통사들의 `헤게모니`를 빼앗은 아이폰=아이폰은 통신사의 부가가치를 빼앗았다. 아이폰 그 자체가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기존 윈도 기반의 스마트폰과 일반 스마트폰은 통신사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됐다. 통신사는 제조사에 자사 이득에 맞게 단말기의 스펙과 안에 들어가는 운용체계(OS), 서비스를 원하는 대로 만들었다. 자사를 위한 시스템으로 폰의 내부와 외부를 완벽하게 구성한 것이다. 옴니아가 T옴니아(SKT), 쇼옴니아(KT), 오즈옴니아(LGT)로 출시된 것도 그 이유다.

아이폰은 다르다.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하드웨어 사양과 유저인터페이스, 애플리케이션으로 구성된다. 서비스도 변경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통신사는 아이폰을 팔아 자사 고객에게 통신사용료 외에 추가로 발생할 수 있는 부가 서비스의 독점적 권한을 박탈당했다.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려면 아이폰 앱스토어에 등록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100대 사건_085] 뒤늦은 아이폰 열풍, 한반도를 강타하다 <2009년 11월>

◇가입자 폭증…스마트폰 시대를 열다=SK텔레콤이 뒤늦은 2011년 아이폰 출시를 선언하면서 KT에서만 가능했던 가입자 수가 확 늘었다. 2012년 7월 기준 아이폰 가입자는 두 통신사를 합쳐 400만명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아이폰으로 촉발된 국내 스마트폰 시장은 어느 정도 규모일까. 2012년 8월 기준 3000만명일 것으로 추산된다. 전 국민의 60% 이상이 스마트폰을 사용 중인 것이다. 지난 2009년 11월 아이폰을 처음 도입한 이래 불과 1년 4개월 뒤인 2011년 3월 말 스마트폰 가입자 1000만 시대를 열더니 7개월 만에 2000만명, 그리고 9개월 만에 3000만명 시대를 연 것이다.

이통사들은 4세대 이동통신기술인 롱텀에벌루션(LTE) 스마트폰을 지원하며 다시 시동을 걸고 있다. 전체 스마트폰의 30%가 LTE 스마트폰인 것으로 집계될 만큼 우리나라 국민의 새로운 스마트폰 흡수 속도는 빠르다. 한국은 아직도 스마트폰 열풍이다.

◆아이폰이 바꾼 한국의 규제, 어떤 것들이 있나?

아이폰이 국내에 상륙하면서 한국 통신 환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사실 그간 아이폰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많은 걸림돌이 있었다. 2년간 출시와 출시 연기, 출시 무산설이 반복되면서 언론에 회자된 횟수는 엄청나다. 사람들은 2007년부터 언론에서 SK텔레콤, KT가 애플과 계약을 완료했으며 곧 출시될 것이라는 보도를 보고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정작 나온 것은 통신사 하나, KT를 통해서였다.

이처럼 진통을 거듭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애플은 글로벌 스탠더드(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을 절대 바꾸지 않기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법에 저촉되는 사안이 많았지만 이를 애플에만 통용되도록 만들기엔 형평성에 어긋났던 것. 결국 수많은 유권해석이 동원되면서 아이폰은 출시될 수 있었다.

몇 가지 핵심 이슈 중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위치 정보법이다. 우리나라 위치 정보법은 위치 정보 사업자 허가와 위치 기반 서비스 사업자 신고를 통해서만 위치 정보와 관련된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규제법이다. 아이폰은 A-GPS 기능을 통해 위치정보와 연계된 서비스를 할 수 있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이 있어 한국 지사인 애플코리아에서 위치 정보 사업자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서비스 전개가 어려웠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방송통신위원회는 법 해석을 완화해 KT가 이미 위치정보 사업자, 위치기반 서비스 사업자로서 자격을 갖추고 있어 자사의 서비스로 포함하겠다는 약관을 넣는다면 아이폰 국내 출시를 허가한다고 말했다.

또 공인인증서 사용을 의무화한 전자금융감독규정도 완화됐다. 인터넷 뱅킹이나 신용카드 결제를 위해 공인인증서를 사용해야만 한다. 하지만 공인인증서는 MS 윈도 액티브X 기반이라 스마트폰에서는 이를 이용할 수 없었다. 아이폰 출시 이후 금융결제원은 규정을 완화해 2010년 4월부터 30만원 이하의 모바일 결제는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7월부터는 거래 한도를 정하면 모바일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애플 앱스토어도 규제에 부딪혔다. 국내에 출시되는 게임물은 당국의 사전심사를 받아 등급을 표시해야 하는데 앱스토어는 글로벌 마켓이기 때문에 특정 나라의 사전 심의를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앱스토어의 게임 카테고리는 한국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차단됐었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1년 7개월이라는 대대적인 심의를 거쳐 `오픈마켓 심의법`을 마련, 모바일 게임 자율 심의가 가능하도록 만들었으며 이에 애플은 지난해 11월 전격 개방했다.


[표] 스마트폰 가입자 추이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