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불복해 이의를 제기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KTL은 명예를 회복할 때까지 불복 절차를 이어나갈 태세다. 지난달 초 청와대에 탄원서를 냈고 감사원 감사도 청구하겠다는 의지다. 평가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도 특성이 다른 공공기관을 일률적인 잣대로 평가하다보니 문제점이 발생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만족스럽지 못한 평가등급을 받고도 참아 온 다른 공공기관이 이의 제기 대열에 동조하면 파문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모든 공공기관으로부터 정원을 늘려달라는 요청을 받는 기재부도 난처한 입장이기는 마찬가지다. 한 곳에 정원을 늘려주면 다른 곳도 늘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출연연이나 공공기관치고 인력부족을 호소하지 않는 곳이 없다. 정부에서 필요한 만큼 정원을 늘려주지 않기 때문에 비정규직 채용이 늘어나 기형적인 조직을 이룬 공공기관이 많다.
KTL 이의 제기사태는 경영평가 결과가 단초를 제공했지만 궁극적으로는 낙후된 시험인증시스템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인증은 법정인증 109개, 지자체 인증 44개, 민간인증 81개 등 234개에 이르지만 인증기관은 정부 산하기관 몇 군데뿐이다. 인증 병목현상 때문에 기업은 인증을 신청하면 6개월에서 1년 이상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인증기관을 믿고 맡겼다가는 납기일을 맞추지 못해 계약이 취소될 수 있다. KTL은 업무지연으로 인한 민원이 몰리자 기재부에 정규직 119명을 늘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돌아온 답은 26명에 불과했다. 정부출연이 아니라 자체 사업비로 인건비를 충당하겠다고 했음에도 공공기관 정원 늘리기가 부담스러운 기재부의 결론은 최소화였다.
인증은 우리나라와 경쟁하는 국가가 무역장벽 도구로 활용하는 무기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에서 인증제도가 기업의 수출 디딤돌이 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장벽이 되는 셈이다. “개별 공공기관의 사정을 다 들어줄 수 없지 않느냐”는 기재부의 태도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관을 민영화를 하든 정원을 늘리든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는 노력이 없다면 수출 역군인 기업피해만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