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안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원 빈국이다. 에너지 소비규모는 세계 10위이다. 에너지의 97%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수입에너지의 거의 100%가 기후온난화의 주범인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 소위 화석연료다. 그렇다고 쉽게 절감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경제의 버팀목인 산업의 구조는 석유, 화학, 철강 등 중화학공업 중심이다. 막대한 에너지 소비가 불가피하다. 설상가상으로 에너지의 대부분을 지정학적으로 불안한 중동지역 산유국에 의존하고 있다.
에너지 안보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에너지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아시아 신흥개도국뿐 아니라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들의 경제성장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에너지 수요가 급속히 증가할 전망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은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정치·외교적 노력은 물론이고 군사적 수단까지 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에너지 안보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관심은 매우 부족하다.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 순위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2013년 세계에너지협의회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 수준은 조사대상 129개국 중 103위이다. 2012년 미국 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에너지 위험도 지수에서도 세계 에너지소비 상위 25개국 중 23위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의 에너지 안보 취약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지구온난화 문제다. 유엔은 지구온난화가 세계안보의 중요한 위협요소로 인식하고 2011년 ‘기후변화의 국제평화와 안보에 대한 영향’을 주요의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2012년 말 남아공 더반에서 개최된 포스트 2020 기후변화협상에서는 2021년 이후 모든 당사국들이 참여하는 국제기후변화체제를 출범시키기로 합의한 바 있다. 화석연료 감축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제화는 필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안보를 위해 긍정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이 원자력이다. 무엇보다 원전연료인 우라늄은 화석연료에 비해 수급이 매우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다. 우라늄은 매장량이 풍부하고 전통적인 우리 우방국 중심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다. 화석연료와 달리 운송이 원활하고 다량의 비축에도 별 문제가 없다. 원전연료가 차지하는 발전단가의 비중도 10%에 불과하다. 지정학적 불안요인에도 별로 민감하지 않다. 온실가스 배출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물론 풍력, 태양열, 바이오, 수소, 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를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의 잠재력에 대해서는 공히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화석연료를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는 무리이다. 풍력, 조력, 태양열 등은 지역적으로 편재되어 있고 통제할 수 없는 자연현상에 민감하다.
이용 가능한 에너지의 양도 매우 제한적이다. 바이오, 수소, 연료전지 경우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고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난제들도 아직 많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혹 원자력 축소는 신재생에너지가 아닌 화석연료의 증가로 이어지고 결국 온실가스 배출량을 증가시킬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를 2015년 4.3%, 2020년 6.1%, 2030년 11.0%까지 높여갈 계획인데 실현가능한 목표라기보다 일종의 희망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우리나라는 원전기술을 자립하고 독자적으로 건설. 운영하고 있는 원전강국이다.
현재 23기를 운전 중에 있고 6기를 건설 중이다. 세계 몇 안 되는 원전수출국으로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수출, 건설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국제에너지기구는 원자력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독일, 스위스 등 일부국가들은 탈 원전을 추진하고 있지만 영국, 프랑스, 미국 등 많은 국가들이 원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비중은 축소하더라도 계속 추진할 방침이다. 중국은 원전을 2020년까지 83기로 늘릴 계획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 원전을 선언했던 일본마저도 최근 안전기준을 새롭게 마련하고 원전 재가동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아시아, 중동 등 여러 나라들도 원전 도입을 계획 중이거나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 원자력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안전은 반드시 담보돼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국내 원전의 부품성능검사 위조 등으로 국민정서가 크게 악화되고 찬반논란이 뜨겁다. 그러나 꼭 한 가지 유념할 것이 있다. 원전의 안전문제, 안전 정도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전문가 몫이어야 한다. 전문가에 맡기고 전문가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
안전문제를 두고 정치권이나 시민단체가 자신의 이념대로 끌고 가서는 안 된다. 안전성, 경제성, 국민수용성 등을 고려한 종합적인 판단은 당연 시민단체, 정치권, 그리고 정부의 몫이다.
이념 논쟁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에너지 안보를 진정 걱정하고 원자력이 제대로 이해, 평가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문유현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정책위원 99yhmo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