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콘텐츠는 공장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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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사를 운영하는 A대표는 창업 초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를 꿈꿨다. 게임이 흥행에 성공하자 그는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행복한 시간은 짧았다. 자율적으로 콘텐츠를 만들다 보니 차기작 출시가 늦어졌다. 직원에게 ‘체계가 없다’는 불만도 들었다. 창의성과 상업성 간 차이를 토론으로 좁히려 하자 게임 상품성을 맞추기 어려워졌다.

‘괜찮은 회사’라고 소문이 나며 개발자가 몰려 회사 덩치가 커졌다. 수익은 그대로인데 비용은 급격히 늘었다.

그래도 A대표는 “세상에 없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우리 회사 동력”이라고 말한다. 이런 경영 방침을 포기 할 생각은 없다.

2015년 9월 10일~12일 부산에서 열린 인디게임페스티벌 BIC
<2015년 9월 10일~12일 부산에서 열린 인디게임페스티벌 BIC>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자율과 여유가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나마 경영진이 의지를 가지고 좋은 콘텐츠 제작을 독려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사례다.

요즘 게임업계에서 ‘프로페셔널’을 가르는 기준은 과금구조가 ‘빵빵한’ 게임을 한 두 달 만에 만들 수 있는지 여부다. ‘세상에 없는 게임을 만들자’는 구호를 외치면 ‘한가하다’는 소리를 듣기 쉽다.

창의적 콘텐츠를 만들자고 말하기 어려운 시대다. 흥행산업인 게임은 부침이 심하다. 글로벌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진다. 올해 실적이 좋았던 회사도 1년 뒤를 예측하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한때 세계 온라인게임 공장으로 불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한 ‘게임수출상담회 ITS GAME 2012’.
<우리나라는 한때 세계 온라인게임 공장으로 불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한 ‘게임수출상담회 ITS GAME 2012’.>

우리나라는 한때 ‘온라인게임 공장’으로 불렸다. ‘공장’이란 단어에는 세계 곳곳에 상품을 내놓는다는 긍정적 뜻과 함께 ‘기성품’을 찍어낸다는 자조가 섞여있었다.

온라인게임 시장을 모바일게임이 대체하며 국내 게임업계는 위기를 겪는 중이다. 그나마 공장 타이틀은 중국에 넘겨줄 판이다. 어쩌면 이 위기는 잘 돌아가는 공장에 만족했던 배부름이 불러온 필연적 결과일지도 모른다.

공장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뿌리를 옮길 수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쌓인 문화적 토양과 역량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어려울수록 ‘정공법’을 선택하는 기업이 늘어야 미래를 기약 할 수 있다.

2015 지스타 전시장이 몰려든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2015 지스타 전시장이 몰려든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김시소 게임 전문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