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판교테크노밸리, 스타트업엔 꿈

판교테크노밸리 입주현황
판교테크노밸리 입주현황

“갓 시작한 스타트업과 벤처가 판교테크노밸리에 입주하는 일은 꿈도 못 꿉니다. 왜냐고요?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사무실 유지도 어렵고 실제 입주할 공간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판교테크노밸리가 신산업의 새로운 메카로 떠올랐지만 정작 신산업 주체가 될 스타트업과 중소벤처에는 꿈에나 그릴 수 있는 도시가 됐다. 높은 임대료와 입주 공간이 부족한 현실 때문이다. 물론 판교에는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운영하는 글로벌게임허브센터 등에 100여개의 스타트업이 있다. 이들은 수백 대 1과 수십 대 1의 경쟁을 뚫고 입성한 기업이다. 그렇다고 이들 기업이 판교에서 터를 잡는 것 역시 꿈이다.

[이슈분석]판교테크노밸리, 스타트업엔 꿈

◇판교 임대료는 도대체 얼마

“판교 임대료는 분당보다 비싸고 강남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판교 지역의 한 부동산 업체 관계자는 판교 임대료가 분당을 넘어선지 오래 됐다고 설명했다.

A부동산에 따르면 판교역 부근에 위치한 유스페이스, H스퀘어, 삼환하이펙스 등은 ㎡당 적어도 3만~5만원이다. 10명 안팎이 이용할 수 있는 82.5㎡(25평) 사무실을 임대할 경우 월 임대료만 250만~400만원이다. 3000만~5000만원의 보증금과 관리비는 별도다.

최근 소호 사무실도 늘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더 비싸다. 사무실과 책상 등 집기류와 6.6~9.9㎡(2~3평) 사무 공간에 책상을 들이고 업무를 보는 식이다.

이 지역의 또 다른 부동산 업체 관계자는 “판교에 사무실을 구하는 기업이 늘면서 작은 사무실과 집기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소형 소호 사무실도 늘었다”면서 “3~4명이 사용하는 9.9㎡ 규모의 월 임대료가 150만원 안팎”이라고 설명했다. ㎡당 10만원이 넘는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사무실 임대료가 ㎡당 6만~8만원임을 고려하면 강남 수준에 근접했다. 분당 야탑역 근처 사무실 밀집 공간이 ㎡당 2만~3만원 수준인 것에 비해서도 비싸다. 구로·가산 디지털밸리가 1만~2만원 안팎으로 저렴한 것과 크게 대조된다.

A부동산 업체 관계자는 “판교는 주변 조건이 좋고 교통이 편리해 공실률이 계속 떨어져서 5~1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임대를 문의하는 기업도 매일 3~4건 이상”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제 투자를 막 받아서 사무실을 알아보는 기업은 자리 잡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임대율 제한에 입주 업종 제한까지

이처럼 판교 사무실 임대료가 비싸게 형성된 것은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한 부동산 분석 업체 관계자는 “임대료가 비싼 것은 입주사의 건물마다 자가사용률이 높고, 산업단지로서 입주 업종이 제한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06년 판교테크노밸리 분양이 시작될 무렵에 작성된 사업계획서가 이 같은 업무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도는 분양 당시 신청 컨소시엄이 작성하는 사업계획서에 구성 기업이 건물을 사용하는 비율을 적어 놓게 했다. 한 예로 자가사용률을 80%로 써 넣으면 임대는 20%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기업이 분양을 받을 목적으로 임대율을 낮게 잡았다. 그렇다고 모든 임대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임대 역시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 나노기술(NT), 문화기술(CT) 등 기술 기업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컨소시엄별로 차이가 있지만 자가사용률은 최대 64%~100%로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임대 여유 공간이 없어 임대할 사무실이 없는 셈이다.

분양을 받아 사옥을 지은 기업도 불만이 많다. 병원이나 직원식당, 어린이집 등 공공생활 시설까지 자가이용률 항목에 묶여서 임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게임사는 의사와 간호사, 식당 종업원, 어린이집 교사까지 모두 회사 종업원이다. 상업시설 임대가 금지됐기 때문이다.

사업이 분양 당시보다 위축돼 구조조정을 한 기업은 속이 더 쓰리다. 직원이 줄었지만 자가사용률 규정에 묶여서 임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입주사 관계자는 “사업계획 당시인 2006년에는 사업이 축소될 지 알 수 없었는데 사실상 사업이 위축된 상황에서 모두 입주 기업이 사무실을 사용하라고 종용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I사, M사 등은 자가사용률을 어겨 문제가 되기도 했다.

경기도는 분양을 받을 당시 연구시설 목적으로 저렴하게 분양받은 만큼 사업계획을 어기는 것에 행정 처분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경기도 관계자는 최근 입주 기업 임대율을 일괄로 23% 높이는 계약 변경을 추진하고 있어 사무실 임대 공간의 여유가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스타트업 상생 생태계 조성되려면

업계 관계자들은 판교에 스타트업이 상생할 수 있는 터전을 더욱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판교에서 수백개 스타트업이 지원받아 창업했지만 이후 판교에서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스타트업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일괄 지원하는 제도가 아쉽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부의 직접 지원이 아니라 하더라도 임대 공간의 공급 확대를 통해 간접 지원이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래 산업에 대비한 기술단지 조성 정책이 아쉽다는 지적도 했다.

박준선 이노밸리 부사장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테크노밸리를 분양할 때부터 미래 산업을 연구하고 준비했다면 스타트업 양성은 더욱 속도를 냈을 것”이라면서 “정부 지원과 함께 민간 기업이 산업을 선제 준비할 수 있도록 민간 주도의 정책에 힘이 실렸으면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제2 판교테크노밸리에서는 판교테크노밸리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면서 “스타트업과 벤처가 상생할 수 있도록 분양 때부터 대기업이 스타트업과 벤처를 육성하는 조건을 담는 등 미래 산업에 대비한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민 성장기업부(판교)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