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과학 기술 행정 체계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정립된다. 현대 의미의 과학 기술 행정은 학제 간 및 다학제 간 접근과 다양한 부처 및 전문가, 정책 대상자 참여가 필요한 정책으로 인식되고 있다. 과학 기술 발전으로 과학기술 정책 영역이 기술 혁신 전반을 다루는 정책으로 확대돼 왔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정책의 새로운 변화는 정책 통합과 조율을 의미하는 정책 조정의 필요성을 필연으로 유발했다.
![[신년기획]향후 과학기술행정체제의 설계 방향](https://img.etnews.com/photonews/1701/904369_20170105104718_422_0001.jpg)
저개발국, 개발도상국, 선진국이 각기 다른 과학기술 행정 체제 진화 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것은 변화에 대한 대응 방식이 서로 다른 까닭이다. 현재까지 일반화된 진화 형태를 살펴보면 저개발국과 개도국은 집행 부처 형태의 전담형 과학기술 행정 조직을 운영한다. 반면에 선진국은 전담형이 아닌 행정 체제와 상위 차원에서 과학 기술 혁신 통합·조정 기능을 강화한다.
미국은 기초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국립과학재단(NSF)을 두고 관련 부처가 과학기술 정책 기능을 수행하는 한편 조정 기능을 대통령실에 두고 운영한다. 일본, 독일, 프랑스는 고등 교육과 연구 기능을 결합한 부처를 중심으로 과학기술 행정을 수행한다. 일본은 총리부에 과학 기술 혁신을 통합하고 조율하는 조정 기능을 설치, 운용한다. 반면에 영국은 기업혁신기술부(BIS)라는 거대 부처를 수립, 과학 기술 혁신을 중심으로 경제와 산업 부문 등을 통합·조정하는 행정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의 핵심은 과학 기술 혁신 현상을 국가가 어떻게 수용하는가에 따라 과학기술 행정 체제 모습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은 1967년 과학기술처가 설립된 이후 2007년(노무현 정부)까지는 전담 조직(1998년 2월 이후부터는 과학기술부)이 총괄해 왔다. 2004년부터는 과학기술부가 부총리 부서로 격상됐고,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신설돼 현재 영국의 기업혁신기술부와 유사한 미시경제 정책을 담당해 왔다. 2008년(이명박 정부) 이후에는 교육 정책과 과학기술 정책을 결합시킨 교육과학기술부,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부터는 과학 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정책을 결합시킨 미래창조과학부가 운영되고 있다. 1999년부터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현 국가과학기술심의회)가 설치돼 과학기술 정책 조정을 담당하고 있다.
짧은 기간에 우리는 선진국이 시도하는 다양한 과학기술 행정 체제를 압축 경험했다. 이는 한편 새로운 정부 때마다 과학 기술 혁신 현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논리 및 실증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과학기술 행정 체제를 구축하고 운영해 왔다는 점을 방증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리가 과학 기술 혁신 현상을 이해하고 이를 행정 체제로 수용하고자 하는 방식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성큼 다가온 점을 감안한다면 과학 기술 혁신을 위한 우리의 행정 체제는 과거와 달라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현재 거론되고 있는 과학기술 행정 체제 논의가 새로운 거대한 환경 변화 분석과 이를 반영하는 논리 사고로 이뤄지기보다 아전인수의 이해관계 반영 차원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50년을 책임져야 할 행정 체제를 설계해야 하고, 이를 과학 기술 부문에도 반영해야 한다. 그리고 과학기술 행정 체제는 연구자들의 창의 연구 활동과 이를 통한 기술 혁신 성과를 최대화할 수 있는 조건 마련을 기본 전제로 해야 한다. 경험으로 볼 때 최근에 시도된 과학기술 행정 체제 실험은 이런 기본 조건을 갖추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최근 대한민국은 새로운 기술 혁신 창출에 목말라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진국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영국과 독일처럼 과학 기술 연구 전통이 오래 된 국가들의 경우 행정 체제 이면에 체계를 갖춘 연구 시스템과 원칙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영국의 연구회(Research Councils) 시스템과 홀데인 원칙, 독일의 4대 연구회 시스템과 하르나크 원칙 등이 그것이다. 홀데인 원칙은 공공 연구 관련 예산 배분을 담당하는 조직과 연구에 관한 의사결정은 연구회 독자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원칙이다. 하르나크 원칙은 독일의 공공 연구시스템과 연구 주제 선택은 연구자에게 맡겨야 한다는 전통에 따르는 원칙을 가리킨다. 우리가 다음의 과학기술 행정 체제를 설계할 때 한 가지 더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의 지속 가능한 시스템과 연구 원칙을 행정 체제 이면에 담아야 할 시기가 됐다는 사실이다.
이장재 KISTEP 선임연구위원·한국기술혁신학회 15대 회장 jjlee@kistep.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