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23>작은 생각의 혁신

역사를 보면 정사와 야사가 사뭇 다른 경우가 있다. 정사는 사실을 따지고, 야사는 얘깃거리가 따른다고 했다. 그런 탓일까. 종종 정사에만 나오는 숨겨진 얘깃거리가 있다.

먼저 삼국지를 예로 들면 야사에서 간과하는 등장인물 가운데 장완, 동윤, 비의가 있다. 서기 234년 제갈량이 여섯 번째 기산행에서 죽음을 맞자 정사를 넘겨받은 이가 이 세 사람이다. 제갈량과 정사를 돌본 덕에 촉 사람들은 이들을 사영(四英)이라고 높여 불렀다. 그러나 야사는 제갈량 죽음에서 이야기를 19년 뒤 서기 253년 봄 강유가 일으킨 첫 북벌로 넘겨 잇는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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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폴리콤 최고경영자 제프 로드먼에게는 종종 겪는 난감한 일이 있다. '어떻게 혁신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답할 때면 청중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20억달러 가치의 글로벌 통합 커뮤니케이션 기업의 창업주에게 기대한 답이 아니라는 반응이었다.

로드먼의 대답은 '작은 생각'부터 혁신하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성공은 세 가지라고 말한다.

첫째 작은 아이디어가 만드는 기회다. 1990년 로드먼은 픽처텔 동료 브라이언 힌먼과 폴리콤을 창업한다. 첫 대박 아이디어는 라디오섀크의 95센트 브로슈어에 있었다. 과거 좋은 음질을 위해선 덩치 큰 하이파이 스피커가 대세였지만 이즈음 나온 어쿠스틱 서스펜션 스피커는 크기가 10분의 1도 안됐다. 공간 좁은 회의실에 제격이었고, 이것은 로드먼의 첫 성공작이 된다.

둘째 가장 단순하고 작은 해결책을 찾으라는 것이다. 상식은 큰 혁신이 대성공을 부른다고 하지만 정작 사례는 많지 않다. 역설이지만 작은 혁신이 만든 큰 성공은 얼마든 있다. 당신이 최고혁신책임자라면 던져야 할 질문은 '뭔가 큰 놀라운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작은 변화는 무엇이냐'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셋째 디자인 스몰이다. 혁신 기술이 종종 소비자 경험에 역행할 때가 있다. CD가 보편화되자 도시바와 히타치는 DVD오디오, 소니와 필립스는 슈퍼오디오란 새 음향 표준을 내놓고 격돌했다. 그러나 결론은 싱겁게 끝난다. 정작 소비자들은 음질 차이를 구분할 수 없었다. 디자인 스몰의 핵심은 고객이다. 신제품 사이클마다 기능과 만족은 높이고 번거로움은 줄여야 한다.

세 번째는 작은 혁신 습관이다. 잘나갈 때 신제품 개발을 시작하는 것 또는 팀워크도 실상 기업에 있는 작은 습관이다. 혁신 경험이 없는 기업일수록 거창한 아이디어에 매몰되지만 정작 혁신 기업일수록 월급날에 꼭 아이디어 회의를 여는 것 같은, 어찌 보면 사소한 관행과 작은 혁신 습관이 있었다.

제갈량에 이어 장완, 동윤, 비의가 차례로 죽자 대권은 결국 강유에게 넘어간다. 강유는 북벌을 승상(제갈량)의 유지라 말하며 구벌중원(九伐中原), 즉 아홉 차례의 북벌 전쟁을 벌인다. 그리고 그 끝에 촉의 멸망이 있었다. 후대의 정사는 강유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고 한다. “공명을 세우기 좋아했으며, 평소 포의(布衣)의 업(평범한 일)에는 뜻을 두지 않았다.”

한번 따져 보자. 성공한 혁신들이 과연 호사가들의 떠벌림처럼 원대한 시도의 결과물인지. 제갈량 사후 촉의 정치는 안정됐고, 국력 또한 더 강성해졌다는 한 사서의 평가를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