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55>C-스위트 선택

전가의 보도.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명검을 말한다. 고대 사회에서 검이란 생과 사를 가르는 도구다. 그러나 그 시절 야금술로는 명검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니 좋은 칼은 집안 대대로 대물림해서 보전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 관용구의 쓰임새는 문화마다 다르다. 일본에서는 가문이 위기에 처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꺼내 드는 비장의 무기를 뜻한다.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일에나 꺼내 들기만 하면 문제를 단칼에 해결할 수 있는 만능 수단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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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략 컨설턴트인 리타 맥그래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위기에 처한 수많은 글로벌 기업을 보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위기 앞에서 마음이 급해진 최고경영자(CEO)들은 구조 조정을 단행하곤 했다. 이럴 때마다 혁신은 멈춰 서고 있었다. 과연 바른 선택일까.

기업 사례를 살펴본 후 그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 비장의 무기가 될지는 몰라도 만능 도구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그 선택에 숨은 철학이 문제였다.

첫 사례는 에이번이다. 안드레아 정이 경영을 맡은 지 6년 만에 위기가 찾아온다. 2005년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두 분기 연속 손실에 맞닥뜨린다. 어느 금요일 늦은 밤까지 사무실에서 고민하고 있는 그녀를 찾아온 친구이자 유명 컨설턴트인 램 차란이 “파이어 유어셀프, 하이어 유어셀프”라는 유명한 조언을 남긴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튿날 정은 매니저 30%를 해고한다. 자신이 손수 짠 마케팅이며 투자 전략마저 손을 본다. 그러나 그는 그 순간에도 에이번의 정수가 무엇인지 결코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봤다.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것.' 비록 해고와 구조조정을 했지만 그것이 기업의 사명을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을 재점화하기 위한 선택이 돼야 한다고 봤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반면에 홈디포는 달랐다. 로버트 나델리는 대체로 연봉이 높은 경험 많은 고참 직원부터 해고한다. 문제는 홈디포가 단순히 건자재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었다는 데 있었다. 이들은 단순한 매장 직원이 아니었다. 겁 없이 테라스를 뜯었다가 뒷감당하지 못한 채 난처해 하고 있는 초보 손수조립(DIY)족을 너끈히 조언할 수 있는 베테랑 목수이자 배관공, 전기공들이었다. 나델리는 무엇이 그토록 홈디포를 홈디포답게 만들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실상 그러려는 노력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홈디포는 나델리를 최고경영자(CEO)로 불러들인 후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다.

기업 실적이 나빠지면 CEO는 어느 정도의 무자비함을 보여 주고 고삐를 당기는 것이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초 상식 판단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대개는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이기 마련이다. 'C-스위트'로 불리는 명철해야 하는, 경영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원초 수준의 선택인지도 모른다.

한번 생각해 보자. 만일 당신에게 이런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무엇을 할 것인가', 두 번째는 '무얼 위해 할 것인가'이다. 비슷한 듯 보이지만 두 질문은 근본이 다르다. 과연 경영자로서 나는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 셈일까. 안드레아 정과 나델리의 선택은 비슷한 듯 달랐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