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조사단, ESS 화재 원인 '배터리' 지목…LG화학·삼성SDI '발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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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한국전력 경산변전소 내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날 화재로 배터리 1개동(16㎡) 등이 불에 탔다. 이 지역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 중인 모습.
<지난해 5월 한국전력 경산변전소 내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날 화재로 배터리 1개동(16㎡) 등이 불에 탔다. 이 지역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 중인 모습.>

민관합동 조사단이 지난해 8월 이후 발생한 5건의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사고 원인으로 '배터리'를 지목했다. 과충전·과방전으로 인한 열화 현상을 제때 막지 못한 것이 주원인으로 꼽혔다. 이는 지난해 6월 1차 조사에서 운영관리 미흡 등 인재로 발표한 내용과 상반된 결과다. 배터리 제조사는 정부의 조사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며 공방을 예고했다.

ESS 화재사고 조사단은 6일 “충남 예산, 강원 평창, 경북 군위, 경남 김해에서 발생한 ESS 화재사고는 유사 또는 동일 사업장에서 발화 지점과 유사한 방전 후 저전압 및 큰 전압 편차를 보인 배터리 등을 종합 분석해 '배터리 이상'을 화재 원인으로 추정했다”면서 “경남 하동에서 발생한 사고는 노출된 가압 충전부에 외부 이물이 접촉해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학계·연구기관·국회 등 15명으로 구성된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2차)을 꾸려 지난해 6월 이후 전국 5개 지역에서 발생한 ESS 화재사고를 조사했다. 예산, 군위, 하동 등 3개 지역에서 발생한 화재는 LG화학이 생산한 제품이다. 평창과 김해 화재는 삼성SDI가 제조한 제품에서 촉발됐다.

조사단은 전국 5개 지역 화재사고 가운데 하동을 제외한 4곳의 화재 원인으로 LG화학과 삼성SDI가 생산한 '배터리'를 지목했다. 화재로 배터리가 소실돼 직접적인 원인을 규명할 수 없는 경우 사고 사업장과 동일한 시기 및 모델 등으로 설치된 유사 사업장을 분석했고, 조사 내용을 토대로 기업의 소명 의견을 검토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조사단은 지난해 8월 예산 태양광발전소에서 발생한 ESS 화재사고 발화 지점이 배터리인 것으로 확인, 현장에서 수거한 배터리에서 내부 발화 시 나타나는 용융 흔적을 발견했다. 사고 사업장과 동일 모델 및 동일 시기에 설치된 인접 ESS 사업장에서 유사한 운영 기록을 보인 배터리를 수거해 해체·분석한 결과 일부 파편이 양극판에 점착된 것을 잡아냈고, 배터리 분리막에서 리튬·석출물이 형성된 것도 확인했다.

평창 태양광발전소 ESS 화재사고 역시 배터리가 발화 지점으로 분석됐으며, 과거 운영 기록에서 하압 전압 범위를 넘은 충·방전 현상이 발견됐다. 또 배터리 보호 기능이 작동하지 않은 것도 밝혀졌다. 모사 실험에서는 배터리 양극반 내부 손상, 분리막 구리 성분 검출 등이 파악됐다. 군위 화재사고에서 발견한 배터리에서는 융용 흔적이 나타났고, 김해 화재사고 현장에서는 화재가 발생한 지점의 배터리 간에 전압 편차가 커진 원인을 도출했다.

이와 달리 하동에서 발생한 ESS 화재에서는 배터리 이상으로 지목할 수 있는 운영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 조사단은 노출된 가압 충전부에 외부 이물질이 접촉해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화재 원인에 배터리가 직접 연관돼 있진 않다는 것이다.

조사단 관계자는 “ESS 화재사고는 95% 이상 높은 충전율을 조건으로 운영되는 방식과 배터리 이상 현상이 결합돼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충전율을 낮춰 운전하는 등 배터리 유지·관리를 강화하는 것이 화재 예방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ESS 제조사는 조사단이 발표한 화재 원인 결과에 강력 반발했다.

삼성SDI는 '배터리, ESS 화재와 인과관계 없다'는 제목의 긴급 설명 자료를 내고 조사단이 발표한 배터리가 화재 현장이 아닌 다른 현장의 배터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삼성SDI 측은 “조사단은 평창·김해 사이트에 설치된 배터리와 유사한 시기에 제조된 배터리가 적용된 다른 사이트 제품을 요청했고, 이에 인천 영흥과 합천에 설치된 제품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삼성SDI는 “조사단이 분석한 내용은 화재가 발생한 사이트가 아닌 동일 시기에 제조돼 다른 현장에 설치·운영되고 있는 배터리를 분석해 나온 결과”라면서 “조사단 조사 결과가 맞다면 동일한 배터리를 적용한 유사 사이트에서도 화재가 났어야 했다”고 반박했다.

LG화학도 “배터리가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판단한다”면서 “지난 4개월 동안 실제 사이트를 운영하며 가혹한 환경에서 실시한 자체 실증 실험에서 화재가 재현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LG화학은 “조사단이 발견한 양극 파편, 리튬 석출물, 음극 활물질 돌기, 용융 흔적 등은 일반적인 현상 또는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편 산업부는 ESS 신규설비 충전율을 옥내 80%와 옥외 90%로 제한 조치하고, 옥내 ESS 설비를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별도의 전용 건물로 이전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혹시 모를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모든 ESS 설비에 관한 운영 데이터를 별도로 보관하도록 제도를 손질했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