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킥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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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에 주차된 공유 전동킥보드. (전자신문 DB)
<서울 도심에 주차된 공유 전동킥보드. (전자신문 DB)>

'킥라니.' 전동킥보드를 도로 위에서 갑자기 출몰하는 고라니에 빗댄 신조어다.

지난 주말 서울 지하철 2호선 합정역 부근 인도를 걷다가 화들짝 놀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전동킥보드가 쏜살같이 다가왔다. 다행히 상황을 미리 인지해 충돌은 피했다. 전동킥보드 운전자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곡예 부리듯 보행자 사이를 지그재그로 통과해 사라졌다.

다시 인근을 걷는 동안 대여섯 대의 전동킥보드 운전자를 마주쳤다. 모두 헬멧을 착용하지 않았다. 차도 대신 인도 사이를 빠르게 내달렸다. 혼자가 아닌 두 명이 부둥켜안고 쓰러질 듯 위태롭게 질주하는 운전자도 보였다.

평소 차량을 운전할 때도 교차로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전동킥보드에 움찔한 적이 여러 번이다. 횡단보도 주변에 아무 곳에나 버려놓듯 주차한 전동킥보드에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전동킥보드 관련 법률을 찾아보곤 또 한 번 놀랐다. 안전 규제나 의무가 사실상 전무했다. 이달 초 전동킥보드와 관련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올해 말부터는 무면허이거나 헬멧을 쓰지 않아도 만 13세 이상이면 누구나 주행이 가능하게 됐다.

이동의 자유 측면에서 본다면 환영할 일이다. 공유킥보드업계 역시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라지면서 투자 유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기존 자동차업계까지 전동킥보드와 연계한 모빌리티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안전 측면에서는 정부나 업계 모두 손을 놓고 있다. 일반 자전거와 달리 급가속으로 주행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전동킥보드는 여전히 보행자나 차량 운전자 입장에서는 위험 대상이다. 운전자 기준을 만 13세 이상으로 낮춘다면 안전 논란은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공유전동킥보드라는 신산업에 길을 열어 주면서 안전도 함께 지킬 수 있는 사회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안전 규정이 있어도 실제 관리나 단속을 하지 않는 지금 상황에선 어떤 법규에 따라야 할지 혼란스럽다. 새 운송 수단에 맞는 교통 법규 제정은 물론 도로 위 안전을 위한 캠페인도 펼쳐야 한다.

전동킥보드를 통한 이동의 자유보다 중요한 가치는 보행자와 운전자의 안전이다. 머지않아 도로에 등장할 자율주행차도 안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모두의 안전한 이동을 위한 도로 위 약속이 시급하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