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화상 판매기', 규제·반대 벽에 막혀 8년째 개점휴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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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알코리아가 개발한 원격 화상 투약기 외관 (사진=쓰리알코리아)
<쓰리알코리아가 개발한 원격 화상 투약기 외관 (사진=쓰리알코리아)>

국내 최초 비대면 의약품 판매시스템인 '화상투약기' 상용화가 또 좌절됐다.

화상투약기는 약국이 문을 닫은 야간이나 공휴일에 의약품 구입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개발됐다. 코로나19 이후 주목받는 비대면 의료 시스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의약품 비대면 판매를 금지한 유권해석과 약사회 반대에 막혀 8년째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최초 화상투약기를 개발한 쓰리알코리아 창업자 박인술 대표는 “일반의약품 판매 활성화로 의료비와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할 수 있고 심야나 공휴일 경증환자 응급실 이용을 줄여 응급실 혼잡도 개선할 수 있다”면서 “일부 지역에서 시행되는 공공 심야약국과 비교해도 비용과 운영시간 등 측면에서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원격 화상 투약기 내부 약품이 보관되는 모습. (사진=쓰리알코리아)
<원격 화상 투약기 내부 약품이 보관되는 모습. (사진=쓰리알코리아)>

30여년동안 약국을 운영한 약사 출신인 박 대표는 2013년 화상투약기를 개발했다. 365일 비대면으로 약사와 상담하고 일반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2개월 동안 시범운영하며 호평을 받았지만 약사 반대로 중단됐다.

이후 약사법상 대면 규정에 위반된다는 유권해석이 나오며 8년째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20대 국회에 약사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폐기되기도 했다. 다시 가능성이 열린 건 지난해 1월 정보통신기술(ICT)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 안건으로 신청하면서다. 수차례 논의 끝에 지난달 10차 심의위원회 안건 상정이 예고됐지만 하루 전 취소됐다. 여당 의원과 약사회 반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박 대표는 “실증특례는 일종의 시범사업으로 결과에 따라 사업의 존폐 여부도 결정되는데 특정 집단 반대로 시범사업조차 어렵다면 규제샌드박스 취지가 무색해 지는 것”이라며 “모든 신산업이나 신기술은 기존 사업자와 대립할 수밖에 없는데 기존 산업에 영향을 미치더라도 앞으로 가야할 길이라면 이를 뚫고 나가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약사회는 영리 기업자본의 의약품 판매업 진출을 이유로 들어 화상투약기 도입을 반대한다. 기계 오작동으로 인한 오투약 우려, 약물 오·남용, 책임 소재 등 문제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화상투약기는 의약품 자판기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환자는 특정 의약품을 선택할 수 없고 어떤 의약품이 판매되는지도 볼 수 없다”면서 “약사 판단에 의해 약을 판매하고 복약지도가 이뤄지며 전 과정은 녹음, 녹화돼 보관된다”고 설명했다.

박인술 쓰리알코리아 대표(약사)가 원격으로 화상투약기를 통한 의약품 판매 상담을 하고 있다.
<박인술 쓰리알코리아 대표(약사)가 원격으로 화상투약기를 통한 의약품 판매 상담을 하고 있다.>

화상투약기는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고안됐다. 통화버튼을 누르면 원격으로 약사와 연결된다. 모니터에 약사 면허증을 확인하고 상담을 시작한다. 증상에 따라 약사가 약을 추천하고 복용법을 설명한다.

약품명과 가격을 확인하고 카드를 넣어 결제하면 의약품이 배출된다. 배출구에는 카메라가 설치돼있어 약사가 원격에서 약품명을 확인한다. 소비자가 의약품을 받은 후 한 번 더 약품명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 오투약 우려를 줄였다. 원격제어시스템으로 온도와 습도를 관리해 의약품 변질을 막는다.

처방전이 없이도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만 판매한다. 일반의약품 중에서도 11개 효능품목군으로 판매가 제한된다. 초기 3개월 시범 운영 약국은 10곳으로 한정되고 문제가 없으면 2년간 1000곳까지 확대하도록 제한을 뒀다. 화상투약기는 약국 앞에만 설치할 수 있다.

해외에선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대부분 국가가 일반의약품은 지명 구매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중국, 유럽 등에는 소비자가 직접 선택하는 의약품 자판기가 있다. 일본만 해도 드럭스토어에 각종 가정용 상비약을 판매한다.

박 대표는 “의약분업 이후 약국이 처방전에 종속되며 복약지도에 한계가 있지만 심야에 일반의약품을 통한 복약지도로 약사 직능이 확장될 수 있다”면서 “약국이 문을 닫는 시간에도 추가 수익을 낼 수 있고 주부나 장애인 등 재택근무가 가능한 새로운 약사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화상투약기는 약국을 배제하는 것이 아닌 보조하는 역할이며 8년간 모든 문제를 검증하고 안전성 보완 장치도 이·삼중으로 마련했다”면서 “시범사업을 통해 우려하는 부작용이나 문제가 실제 있는지 검증해보고 건설적인 논의를 해보자”고 약사에게 호소했다.

정현정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