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38>혁신 팔레트

비즈니스 기회. 이것처럼 아는 만큼 보이는 것도 없겠다. '말도 안돼'라고 했지만 성공한 일은 얼마든 있다. 새 관찰용 드론이라면 어떤가. 수익은 차치하고 몇 대나 팔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누군가 계산으로는 얘기가 달라진다. 북미에만 2000만명의 조류 관찰자들이 있다. 이들은 연간 300억달러를 장비에 쓴다. 이 중 1%는 더없이 멋진 클로즈업 영상에 대한 열망 가득한 매니아들이다. 이 중 5%만 따져도 연간 1500만달러짜리 잠재 시장이 있는 셈이다. 거기다 이들이 원하는 드론은 초저소음에 고화질 영상장비를 탑재한 하이엔드 제품이기도 하다.

혁신만큼 까다로운 것도 없다. 성공률도 그리 높지 않다. 경쟁도 심하다. 인큐베이터들은 손해를 보기 일쑤다. 10건 중 1건 정도 수지타산이 맞다. 그리고 이 성공한 1건들 중 5%가 수익의 95%를 거둬간다. 이것이 이 실패로 가득한 혁신시장이 성업 중인 이유다.

그러다보니 성공을 담보한다는 비법이 넘쳐난다. 반대로 실패는 잘 따져보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 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정작 무지하다. 실패에도 원칙이 있을까. SRI인터내셔널(SRI International) 최고경영자(CEO)였던 커티스 카슨(Curtis Carlson)의 경험담이니 들어볼 만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의 표현을 빌자면 대개 실패는 세 가지에서 온다. 대개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꿴다. 대부분은 가치 제안부터 흔들린다. 고객 요구를 보는 대신 자신의 아이디어에 매몰된다. 칼슨의 표현을 빌자면 9할의 실패는 고객이 필요한 것 대신 아이디어를 사랑한데서 온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뭐가 중요한지 아직 파악 못했다는 분명한 표징이기도 하다.

이 첫 함정을 피하면 바로 두 번째 함정이 덮쳐온다. 잠시 안도할 틈도 없다. 고객이 원하는 것에 매몰되는 순간 실제 요구를 놓치기 십상이다. 첫 아이폰을 생각해 보자. 소비자 조사에는 키보드를 원한다고 했다.

결과는 어땠나. 애플은 키보드 버튼을 구겨넣는 대신 터치스크린으로 구현했다. 고객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 요구할 수 있다. 반면에 무엇이 가능한지는 알지 못한다. 이 두 번째 함정은 낙엽 깔린 늪과 같다. 고객을 보는 진지한 그 순간에 속수무책 당한다.

문제를 재구성하는 대신 상식에 매몰될 때도 마찬가지다. 캐첩병을 보자. 찐득한 케첩을 목이 좁고 병에 넣었으니 떨어내기 힘든 건 당연하다. 하지만 입구 넓은 병에 넣었다가 왈칵 쏟아지기라도 하면 더 큰 문제다. 뒤집어 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자칫 뚜껑이라도 벗겨지는 순간 낭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니 누군가는 들러붙지 않는 캐첩병을 생각했고, 누군가는 짜는 용기를 고안했다. 하지만 궁극의 해결책은 달랐다. 폴 브라운(Paul Brown)은 거꾸로 세워도 새지 않는 용기를 고안하는 게 물리학이 말하는 최선의 해결책이라 봤다. 그리고 이로서 캐첩을 털어내려 병바닥을 치는 일은 추억이 됐다.

카슨의 글을 실은 잡지는 미술 거장들의 팔레트로 배경을 삼았다. 하필 왜 팔레트일까. 하지만 곧 고흐의 팔레트에선 그의 걸작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보인다. 샤갈의 그것에선 그가 즐겨 그렸던 여인과 말이 있다. 모네에선 화병과 꽃들을 본다.
혹 잡지 편집자는 수많은 걸작이 한 팔레트에서 나왔던 것처럼 혁신도 마찬가지란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수많은 연습의 시간들이 이 팔레트에 함께 묻어 있겠지만.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38>혁신 팔레트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