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지식 공유와 참여로 군산에서 반도체 장비 혁신을 꿈꾼다

윤정식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플라즈마기술연구센터장
윤정식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플라즈마기술연구센터장

에리체(ERICE)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북동쪽 트라파니에 위치한 산 위에 있는 마을이다. 1700여명이 살고 있는 이 작은 마을 중심에는 이탈리아 물리학자 에토레 마요라나의 이름을 따서 설립된 과학문화센터(EMFCSC)가 있다.

1962년 EMFCSC가 설립된 이후 2018년까지 약 140개국 13만2000명 과학자가 이곳 학술대회에 참가했으며, 49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EMFCSC를 방문해 그들의 지식을 세계와 공유했다.

매년 50여개 서로 다른 과학기술 분야 전문 학회가 개최됐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국제적인 학술대회가 개최되고 유지된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비록 지금은 코로나19 영향으로 대부분 학술행사가 취소되거나 온라인 학회로 전환돼 운영되고 있지만, 지역이 갖는 역사 배경을 바탕으로 지식 또는 과학-문화 거점이 형성되는 것만으로도 지역의 작은 도시는 활기를 띠게 된다.

반도체 분야에서 최고 연구소로 알려진 국제 마이크로 전자공학센터(IMEC)는 독특한 공동연구와 협력 방법으로 지식 공유와 참여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IMEC을 반도체 분야 최고 연구소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IMEC의 진정한 강점은 지식 공유와 협업 문화다. 산·학·연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IMEC만의 문화가 최대 강점이다.

가장 큰 특징은 대부분 연구 프로젝트가 산·학 협동, 참여 연구로 진행되거나 추진된다는 것이다. IMEC에서 운영하는 산·학 협동연구 프로그램(IIAP)은 수천만달러 이상 연구비가 필요한 분야에 여러 기업이 공동으로 연구비를 부담하고, 연구원을 파견하는 프로그램이다. 불확실한 분야 투자 위험성 분산, 경쟁국 기업 간 자연스러운 인적교류 및 정보수집이 가능하다.

연구성과는 참여자들이 공동소유하거나 기업 요구에 따라 독자 소유하는 방법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기업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IMEC는 우리나라로 치면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지역 혁신기관들과 비슷한 이력을 가지고 있으나 연구소 조직과 운영 방법은 우리의 출연연과는 완전히 다르다. 독특한 저비용 구조를 가지며, 세계 굴지 기업 간 공동연구로 자연스럽게 연구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와 사회를 새롭게(New) 변화시키겠다는 약속(Deal)인 한국판 뉴딜 성공을 위해서는 과학기술 기반 지역주도형 뉴딜 정책 추진이 중요하다. 그러나 대부분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돼있는 구조에서 지역주도형 혁신모델을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소도시 에리체의 과학문화센터, IMEC 사례는 과학기술 관련 지식 생성, 공유, 참여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프라는 부족하더라도 지식의 생성과 공유, 참여 방식을 혁신한다면 지방의 작은 도시 군산에서도 반도체 장비산업 메카를 꿈꿀 수 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융합연구단 사업은 출연연 간 온-사이트 연구로 국민이 체감하는 국가, 사회 현안 및 산업계 대형 기술현안 해결을 목표로 하는 임무지향적 융합연구다. 2020년도 융합연구단사업으로 반도체 플라즈마 공정장비 지능화기술 개발 및 실증을 위한 플라즈마 공정장비 지능화연구단을 선정, 11월 1일부터 6년간 군산에서 연구를 진행한다.

군산은 전형적인 쌀농사 지역이다. 그리고 반도체는 전자산업의 쌀, 산업의 쌀이라 불린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을 비롯한 출연연과 대학 반도체 장비 산업 관련 연구인력 100여명이 참여해 플라즈마 장비 지능화 기술 거점을 형성하고, IMEC과 같은 기술제휴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운영한다면 6년 내 플라즈마 장비를 똑똑하게 만드는 지능화 기술 분야에서 한국형 에리체, IMEC 모델이 만들어질 것이라 기대한다.

윤정식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플라즈마기술연구센터장 jsyoon@kfe.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