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한국 조선업, 제2 전성기를 대비할 때

[ET단상]한국 조선업, 제2 전성기를 대비할 때

얼어붙은 조선 산업에 훈풍이 불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 수주 소식은 수년간 이어진 시장 침체를 넘어 일궈 낸 성과여서 더욱 반갑다. 국내 조선업계는 올해 6월까지 전 세계 발주량 2402만CGT 가운데 1047만CGT(43.6%)를 수주, 지난해 대비 677% 증가한 실적을 기록했다. 수주량 기준으로는 자국 발주를 앞세운 중국(1059만CGT)에 이어 2위를 차지했지만 수주금액으로는 267억달러로 4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수주의 질은 중국을 압도했다. 특히 주력 선종인 고부가가치 선박의 수주 비중은 61%를 차지했다. 최근 친환경 선박 수요 확대로 가스연료추진 선박 등 수주 비중도 70.1%를 기록했다.

우리나라가 근대식 조선 설비를 갖추고 선진국들과 경쟁한 지 반세기가 지났다. 정부 정책 지원으로 1970년대 말부터 세계 2위 조선국으로 떠오른 이후 석유파동 위기, 1990년대를 전후한 조선 합리화 조치 등 성장통을 거치면서 현재 산업 구조를 갖췄다. 당시 적극적인 투자 및 증설은 이후 경쟁국과의 통상문제로 이어졌다. 그러나 1950년대 중반부터 전 세계 조선산업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던 일본이 한국에 자리를 내준 전환점이 됐고, 2000년 전후 및 금융위기 이전까지 역사적 고점을 기록한 성장 기폭제가 됐다. 조선업을 태동시킨 도전의 역사와 시대적 혜안은 지금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치는 하나의 큰 축이 됐다.

앞으로 세계 조선시장 주도권 경쟁은 한·중·일 3국에 집중될 것이다. 중국은 탄탄한 내수 시장과 적극적인 정부 정책 지원으로 고부가가치 선박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조선 산업 지원 입법과 정책 개발, 기업 간 합종연횡 등으로 경쟁에 대비하고 있다. 반면 우리 조선 산업은 지금까지 숱한 위기를 극복한 경험, 축적된 생산기술, 관리경험 등에 경쟁 우위가 있다.

최근 선박 제품의 패러다임은 친환경·스마트화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이를 위한 퍼스트 무버로서 기술 혁신이 요구된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오는 2050년 국제 해운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50% 줄이기 위한 전략 계획을 채택하고 국제협약 형태로 구체화하고 있다. 각국 탄소중립과 수소경제로 정책 전환이 조선해양 산업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공격적 연구개발(R&D) 추진으로 경쟁국과의 격차를 확대하는 치밀한 전략 및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정부는 자율운항선박 핵심기술 개발은 물론 최근 친환경선박법 시행과 기본계획을 바탕으로 친환경선박 핵심기술 개발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는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가스운반선 및 친환경연료추진선박 핵심 기술을 토대로 암모니아, 수소연료전지 등 차세대 추진시스템 선박과 해양제품 선점을 위한 전략을 시의적절하게 준비해서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한편 수년간 진행된 조선시황 침체는 중소형 조선 및 기자재업계 등 산업 생태계의 동반 침체로 이어졌다. 산업 생태계 재건을 위해서는 대형조선소 중심으로 기자재업계와 신제품 R&D 지원 확대, 우수 협력사와 모기업 기술 개발 협력을 통한 상호경쟁력 제고, 원가 절감 및 생산성 향상 등 동반 성장을 위한 지속적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해운과 강재 등 전후방산업과의 상생·협력을 기반으로 향후 시장 확대 및 새로운 패러다임에 공동 대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조선 산업은 글로벌 경제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표 수주산업이다. 국내 조선업계 대표 주력 선종인 초대형유조선(VLCC)은 중량만 4만톤, 적재화물은 30만톤에 이른다. 건조 기간 역시 2년 가까이 소요될 정도로 많은 인력과 설비가 투입된다. 육상에서 건조되는 최대 중량물이다. 무게만큼 속도는 느리지만 꾸준히 대양을 항해하고 있다. 수주 증가에 따른 과실이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조급할 이유는 없다. 반세기에 걸친 도전과 성취를 토대로 기술 혁신과 상생으로 꾸준히 나아간다면 우리 조선 산업은 또 한번 전성기를 맞을 것이다.

이병철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부회장 Bclee@koship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