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 온라인플랫폼 정책, 보다 정교하게

가파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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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중립성, 브로드밴드 차별(Network Neutrality, Broadband Discrimination)'. 2003년 출간된 논문 한 편이 인터넷 규제 역사를 바꿨다. 팀 우 컬럼비아대 교수가 제안한 망 중립성 개념은 이후 20여년간 통신사와 콘텐츠제공사업자(CP) 간에 논쟁 중심이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국가가 중요한 규제 원칙으로 채택할 정도로 일반적인 이론이 됐다.

망중립성은 “통신사와 정부가 인터넷상 모든 데이터를 동등하게 취급해야 하며, 콘텐츠와 플랫폼, 전송 방식에 따른 어떠한 차별도 금지해야 한다”는 의무로 요약된다.

2000년대 초반 시대 상황에서 설득력이 높았다. 망중립성은 당시 스타트업이던 구글, 야후 등 콘텐츠제공사업자(CP)가 인프라 이용에 있어 불합리한 차별을 당하지 않도록 통신망 성격을 규정했다. 통신사가 비용을 들여 투자했다고 해서 통신망을 완전한 사유재로만 보기는 어렵다. 통신망을 공정성과 표현의 자유 보호라는 사회 규범에 적합하게 사용하고 정부는 적정한 규제를 통해 관리해야 사회 공익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망 중립성은 인터넷에 대한 일반이론과 논리를 규명·확립하면서 인터넷 규제 패러다임이 됐다.

시대는 또 변했다. 이후 2021년 구글·네이버·카카오 등은 콘텐츠 제공을 넘어 디지털서비스 관문을 장악한 온라인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 인터넷 시장 최강자로 군림하게 됐다. 스타트업의 자유로운 인터넷 이용을 옹호했던 팀 우는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강력한 규제론자로 변신했다. 이제 정부의 시선도 네이버와 카카오, 구글, 넷플릭스 등 플랫폼 기업을 향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 방송통신위원회의 온라인플랫폼 이용자법, 금융위원회 온라인금융플랫폼 규제 등 플랫폼을 향한 규제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하지만 새로운 규제가 4차 산업혁명 시대 플랫폼 성격과 사회·경제적 지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규제를 위한 이론적 토대를 정립하려 노력했는지는 의문이다. 온라인 플랫폼 성격을 두고도 해석이 제각각이다. 공정위는 온라인플랫폼을 온라인상에서 경제주체 간 연결을 매개해주는 매개체로 본다. 방통위는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자 간 의사소통·정보 교환·디지털 재화 거래 등을 매개하기 위해 전기통신설비와 컴퓨터 응용기술을 이용하는 정보통신체제로 본다. 당장에 시장에서 벌어지는 온라인 플랫폼의 갑질을 막는 게 시급하지만, 정교한 논리와 이론적 근거 위에서 규제 정책을 수립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출발선은 명확하다. 온라인 플랫폼은 이용자와 기업이 제공하는 데이터를 매개해 사업한다.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은 앱마켓, 온라인마켓과 같은 매개 수단을 소유했을 뿐 데이터는 이용자의 소유다. 플랫폼이 제한된 수의 서비스 제공자에 의해 소유돼 이용 가능 여부가 일방적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을 경우, 정부가 이용조건을 관리 가능하다는 게 통신 필수설비 이론에서 확립된 기본 원리다. 온라인플랫폼에도 이 같은 근거를 참고해 보다 넓은 범위의 공적 책임이 부과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공정이용에 대한 규제 논거는 망중립성이라는 단어로 명확한 표현이 가능했다. 온라인플랫폼 규제와 관련해서도 국민과 산업계가 한 번에 인식 가능한 간결하고 명확한 논리와 이론을 확립해 나갈 시점이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