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96>원칙이 만드는 퍼즐

프리드리히 파울루스(Friedrich Paulus).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장성이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6군 지휘를 맡았다. 거의 승리를 눈앞에 뒀지만 전선을 돌파당하고, 그와 25만명이 거꾸로 포위망에 갇히게 된다. 후퇴해야 했지만 아돌프 히틀러는 위치를 고수하라 한다. 참모장교들은 이 지시를 어기고라도 탈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고지식한 파울루스는 선뜻 결정하지 못한 채 볼가강 언덕에서 러시아의 1월을 맞고 있었다.

혁신을 가차 없이 허무는 것이 있을까. 물론 그렇다. 그 가운데 첫째는 무지이다. 그럼 두 번째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서투른 믿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더욱이 당신이 그토록 진리라고 믿는 그런 것에 대한 서툰 신뢰 말이다.

어떤 것이 그런 것일까.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개념도 그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1960년대에 미니밀로 불리는 제철소가 출현한다. 원료는 고철이었다. 이걸 전기로에 넣어서 녹여 철근이나 저급 철제품을 만들었다. 그러다 기술이 개량되면서 앵글·빔에 이어 드디어 강판까지 만들어 낸다.

누코(Nucor)의 새 공장은 톤당 350달러에 강판을 생산할 수 있었다. 기존 강자인 US스틸(USX)도 뭔가 대책이 필요해 보였다. 누코의 생산단가는 US스틸보다 훨씬 저렴했다. 물론 품질은 다소 처지겠지만 이런 생산비라면 멀지 않아 시장을 넘겨야 할 것이 뻔했다.

그러나 US스틸은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다. 미니밀은 고사하고 새 설비조차 고려하지 않았다. 무지한 탓이었을까. 그 반대였다. 그들 나름대로 계산된, 믿는 구석이 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공장 가동률이었다. 30%나 초과 설비로 남아 있었다. 그러니 언제든 가동률만 더 높이면 강판을 더 만들어 낼 수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 원석비에 추가 인건비, 이런저런 가변비용을 합해 톤당 50달러면 강판을 만들 수 있다는 속셈이 나왔다.

그러나 낡은 공정으로 만드는 강판의 평균비용은 누코보다 훨씬 높았다. 기존 공정이 이윤은 더 낼 것처럼 보였지만 공식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 당연히 결과 역시 그랬다.

누군가는 이것을 한계비용의 역설이라고 말한다. 마치 내가 더 싸게 만드는 듯 보이지만 내가 깔고 앉은 자산의 무게를 고려하지 않은 셈이었다.

이런 예시는 얼마든 있다. 순현가(Net Present Value)를 무작정 들이대면 혁신 기술의 가치를 저평가하기 마련이다. 당신이 지금 그 공정으로 내일도 오늘과 같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아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열심히 걷는다는 것이 사실은 제자리인 것처럼 가당치 않은 가설일 수 있다.

2개월 반이 지나 파울루스가 항복을 택할 때 남은 병사는 9만명 정도였다고 한다. 한때 그의 상관이자 당대의 명장이기도 한 하인츠 구데리안(Heinz Guderian)은 그를 “영리하고 성실하다”면서도 “야전 경험이 부족해”라며 걱정했다고 전해진다.

종종 교본과 공식을 맹신하고선 잘못된 답을 얻을 때가 있다. 갑작스레 실패한 그 많은 글로벌 기업이 어디 경영전문가가 없어서 그랬겠는가. 비슷하지만 교본의 그 촘촘한 조건을 만족하는 동일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원리를 찾되 원칙을 과신하지 않는 것이 퍼즐을 푸는 지름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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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