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책을 읽는 이유, 게임을 하는 이유

[기고]책을 읽는 이유, 게임을 하는 이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민간인 희생이 늘고 있다. 마리우폴에서는 러시아군 폭격으로 18개월 아이가 사망했다고 한다. BBC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남동부 마리우폴에서 민간인이 대피할 수 있도록 임시휴전한다고 밝혔으나 실제로 폭격했다고 한다.

이처럼 전쟁 실체는 미디어에서 그리는 모습과 많이 다르다. 민간인에게 전시국제법이니 대의니, 민족·시대의 요구라는 말은 먼 나라 이야기다. 그저 고통스러울 뿐이다.

최근에 만난 누군가는 게임같이 자극적인 미디어가 많은 탓에 인명 경시가 심해졌다고 주장했다. 전쟁이나 범죄를 소재로 다룬 게임이 많은 건 사실이다. 유혈이 낭자하고 사지 절단을 표현하는 게임도 있다. 화려한 그래픽으로 무장하고 현실감을 특징으로 내세워서 영웅담을 전달한다. 게임의 폭력성을 언급하기에 딱 좋다.

하지만 미화하거나 찬양하는 게임은 드물다. 겉모습과 다르게 반전 메시지를 던지는 게임이 대다수다. '스펙옵스 더 라인'이 대표적이다. 전쟁 중에 벌어지는 참혹한 폭력과 광기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마틴 워커 대위와 로딩 메시지를 통해 영웅 놀음에 취해 게임을 플레이하는 행태를 비판하고 조롱한다.

1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다룬 '발리언트 하츠:더 그레이트워'는 개인에 집중한다. 1차 세계대전에서의 처절함과 인간 드라마를 통해 전쟁의 광기를 표현한다. '변화를 위한 게임'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플레이하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왜 전쟁이 나쁜 것인지 온몸으로 체험한다.

'디스 워 오브 마인'은 전쟁에서 민간인은 어떻게 되는지를 체험할 수 있는 게임이다. 전쟁 중 민간인이 얼마나 고초를 겪는지, 나의 작은 결정이 어떻게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지는지 보게 된다. 인간의 존엄과 전쟁이 권력자들에 의해 어떻게 포장되는지 의문을 던진다.

이 게임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현대전에서 당신은 아무 이유 없이 개처럼 죽을 것이다'라는 문구를 계속 노출하고 경험하게 한다. 어떤 역사 교육도 문학 수업도 이처럼 강력하게 메시지를 전달하지는 못한다. 참고로 이 게임을 만든 회사는 우크라이나 적십자에 85만달러를 기부했다.

앞에서 언급한 게임들은 단순한 쾌락이나 현실 도피로 여겨지던 게임이란 매체를 통해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감정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게임이 매체로서 성숙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걸프전 이래로 전쟁을 생중계하면서 전사자에 대해 진지하고 민감함이 떨어지는 시대에 전쟁의 심각함을 진지하게 고찰하고 애도하는 감정에 플레이어가 공감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어렸을 때 어른들은 항상 독서가 중요하다고 했다. 어떻게든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했다. 논리적으로 글을 쓸 수 있고 상상력을 기를 수 있다고 그랬다. 가장 중요한 건 간접경험이었다. 간접경험을 통해 축적된 지식을 습득하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줬기 때문이다.

이제 게임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 게이머가 게임하고 느끼는 감정은 책을 감상하고 난 느낌보다 더 큰 감동과 울림으로 다가온다. 수동적으로 지켜본 게 아니라 내가 게임의 일부로서 스토리를 완성하기 때문이다.

적군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수천㎞ 떨어진 작전실에서 카메라와 조이스틱만으로 적군의 목숨을 빼앗는 시대다. 조이스틱과 항공사진으로는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기 어렵다. 냉전기 시대 트라우마가 전달되지 않는다.

인간 생명이 '비디오 게임처럼 죽이는 존재'로 전락할 때 전쟁은 사소한 동기로도 쉽게 유발될 수 있다. '비디오 게임처럼 온몸으로 전달하는' 매체가 이를 막을 수 있다. 게임에서 전쟁이 왜 일어나면 안 되는지를 제시함으로써 메시지를 더 깊고 강하게 전달한다. 전쟁은 언제나 피와 죽음, 인간의 존엄성 상실로 이어진다는 걸 게이머들은 이미 알고 있다.

박순 자유게임기고가 pjckisco3@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