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미디어 소유·겸영 규제의 혁신 방향

이성엽 고려대 교수
이성엽 고려대 교수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미디어 시장에 규제개혁의 목소리가 높다. 다른 한편으로는 KBS, EBS, MBC 등 공영방송의 공적 기능 강화, 공적 책무 수행 강화 등을 위한 논의도 한창이다. 4월 22일 열린 방송학회 학술대회에서도 이런 흐름에 맞춘 다양한 주장이 제기됐다. 다만, 최근 미디어 시장의 대세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넷플릭스, 디즈니, 아마존 등 글로벌 OTT가 미디어 시장에 광범위하게 침투하고 있다. OTT는 전달 수단이 인터넷이라는 점, 주로 주문형 영상(VoD) 서비스라는 점, 글로벌 기업이 운영한다는 점에서 레거시 미디어 규제방식인 허가 등의 진입규제, 소유·겸영규제, 내용규제, 광고규제 등이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이점이 성장을 촉진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과 경쟁하는 레거시 미디어에 규제개혁의 필요성도 증가시키고 있다.

또 하나의 국내외 미디어 시장의 큰 변화는 이종 산업의 미디어 시장 진출과 이종 산업 융합이다. 신문사와 대기업의 방송 진출, 통신사의 방송 진출에 이어 이제 글로벌 플랫폼 기업이 검색, 쇼핑,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금융에 이어 미디어 서비스까지 융합하여 제공하고 있다. 한국도 신문사가 종합편성채널을 소유하고, CJ 등 대기업이 케이블TV 등 유료방송 시장에 진입하고, IPTV에서는 통신사의 방송시장 진입이 이뤄졌다. 결국 이들이 유튜브,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와 무한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세계 경제, 산업의 블랙홀인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 기업의 OTT 등 미디어 융합 서비스 확산이라는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 미디어 시장의 과제는 무엇일까. 그동안 방송의 공익성이라는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정교하면서도 강력한 규제를 시행해왔다. 과거 정부의 미디어 정책은 방송을 규제의 대상으로만 여길 뿐 진흥해야 할 미래지향적 산업으로 보지 않았다. 규제목적에 따른 관련 규제수단 및 방식을 규제대상인 방송환경 변화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 다양한 규제 중 소유 및 겸영 규제는 방송사업을 수행할 주체를 한정한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한 규제로서 개선의 필요성이 제일 크다고 할 것이다.

원래 방송소유 규제의 목적은 소유권의 분산을 통해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이런 규제목적의 타당성에도 과도한 소유 규제는 다양한 자본의 유입을 통한 방송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부작용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유투브 등 글로벌 OTT 확산으로 미디어 간 경쟁이 심화된 것은 물론 여론도 매우 다원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사업에 대해 소유제한을 두는 것이 여론 다양성 확보에 실질적 효과가 있는 것일까.

이미 정부는 2009년 방송법을 개정해 여론독과점을 막기 위한 매체합산 시청점유율 규제를 도입했다. 이는 신문·인터넷 등 다른 미디어 시장 점유율을 방송시청 점유율로 환산한 것을 말하는데, 신문의 방송 진출에 따른 여론 독과점을 막기 위한 사후규제 장치로 새롭게 도입된 개념이다. 매체합산 시청 점유율이 30%를 초과할 경우 광고시간 제한이나 방송시간 일부 양도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런 여론 다양성을 위한 사후규제의 원칙이 적용되는 상황에서 사전적인 소유 규제가 여전히 필요한 것일까.

이런 점을 고려하면 대기업의 지상파방송에 대한 소유 규제와 외국인의 지상파 방송소유 규제는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방송법 제8조와 동 시행령 제4조는 자산규모 10조원이 넘는 기업은 지상파방송을 소유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2008년 12월 10조원으로 상향된 이후 13년째 개정되지 않고 있다. 그간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반영하지 못한 낡은 규제라는 점에서 10조 기준을 국가 경제성장,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해 대폭 상향하거나 GDP와 연동하는 방식 등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

사실 대기업 소유제한 규제는 민영방송 기준으로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국가에는 없는 제도로서 타당성에 의문이 있다. 대기업 진입 제한이 필요하다고 해도 현재의 10% 제한은 불합리하다. 지상파 매체 영향력과 형평성 등을 고려해 상향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지상파방송에 대한 외국인 소유 금지제도인데, 최근 여론 형성 과정에서 지상파 방송사의 위상 약화,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 생산·유통을 위한 글로벌 콘텐츠 기업들과의 합작이나 협업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개정이 필요하다. 종편이나 보도전문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IPTV, 케이블에 대해서는 각각 20%, 10%, 49%, 49% 외국인 지분 소유가 허용돼 있다. 방송과 통신 간 규제 형평성, 시장 활성화를 위해 외국인 지분 소유 허용을 검토할 때가 됐다.

유료방송의 경우에는 지상파와 케이블, 위성이라는 이종매체의 소유·겸영 규제, 지상파·케이블, 위성 플랫폼의 PP 소유·겸영 규제, 플랫폼 내 동종 매체 간 소유·겸영 규제 등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매우 복잡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런 규제는 유료방송의 자금 확보 가능성을 제한하는 문제가 있으며, 또한 소유·겸영이 보통 인수·합병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일률적인 제한보다는 사안별로 심사하는 과정에서 구체적, 합리적 타당성을 추구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오랜 기간 방송행정은 공익성, 공공성 규제라는 이유로 디지털 대전환, 인터넷과 미디어의 융합, 글로벌 미디어 시장 확산이라는 시대 흐름을 외면하고 정치적, 정파적 입장을 대변하거나 이해관계자 간 갈등의 조정이라는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미디어가 가지는 문화콘텐츠 산업은 물론 미래 신산업으로서 중요성을 고려해 과감한 소유·겸영 규제의 혁신이 필요하다. 원칙적으로는 시청점유율 규제, 대기업 및 외국자본에 대한 최소규제를 제외한 모든 경제적 소유·겸영 규제는 철폐하거나 대폭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dysylee@korea.ac.kr

[ET시론]미디어 소유·겸영 규제의 혁신 방향

◇이성엽 고려대 교수는

고려대 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미국 미네소타대 로스쿨을 거쳐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1991 년 제35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정보통신부와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거쳐2017 년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로 부임했다.2020 년부터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을 맡고 있고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다. 행정 현장 경험과 법, 정보통신기술(ICT), 데이터 분야 지식을 두루 갖춘 전문가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