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27>당신은 혁신이 들리는가

세로소지음(世路少知音). 최치원의 시 '추야우중'(秋夜雨中)의 한 구절이다.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 없구나'란 의미다.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에서 따온 것이기도 한다. 백아가 타는 거문고 소리를 들으면 종자기는 그 음률의 의미를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런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었다고 한다. 의미가 있으되 알아차리는 이 없다면 세상을 바꿀 지혜도 부질없는 셈이다.

혁신은 체계화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순간순간 즉흥의 결과물일까. 수많은 기업이 오늘도 뭔가를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다. 누군가는 성공하지만 그 희열의 순간에서조차 성공을 다시 반복할 수 있을지를 알 수 없어서 두렵기만 하다.

누군가는 두려워하는 대신 두 가지로 혁신 지형도를 그려 보라고 조언한다. 하나는 기회비용이다. 혁신하지 않았을 때 그 대신 벌어질 일을 말한다. 두 번째는 물론 프로젝트 추진에 들어갈 개발비용이다.

이 공간에서 기업이 해야 할 일이 몇몇 상황에선 명확해진다. 예를 들어 기회비용은 높고 리스크는 낮다면 합리적 선택은 '와이 낫'(why not), 즉 추진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그 반대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를 들어 항공기 제조사가 시장도 명확하지 않은 새 기종을 개발한다고 보자. 주문이 애초에 없는 것이니 기회비용은 그만그만이다. 하지만 개발 위험은 끝이 없다. 이 경우 적합한 전략은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 두 사례가 설명하는 바가 많지만 대부분 기업이 겪는 것은 이 둘이 상존하는 경우다. 여기 좋은 사례가 있다. 예전 아날로그 전화교환기 시장은 AT&T와 웨스턴 일렉트릭(Western electric) 차지였다. 노던 텔레콤(Northern Telecom)은 디지털에서 반전의 가능성을 본다. 주고객인 벨 캐나다(Bell Canada)조차 준비됐다고 한다.

하지만 개발 목록을 뽑아 보니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개발비용은 2억달러까지 나왔다. 노던 텔레콤의 선택은 '스텝-바이-스텝'이었다. DMS 100 개발 프로젝트는 세 개의 통제 가능한 작은 프로젝트로 나눈다. 이 시간에 고객인 벨 캐나다도 성능 요구를 하며 서서히 시장을 만들어 간다.

비슷한 다른 사례도 있다. 이즈음 스웨덴 에릭슨(Ericsson)도 디지털 교환기를 생각한다. 자국 시장으로는 수지를 맞출 수 없었다. 글로벌 기업과 면대면 경쟁을 할 수도 없었고, 어떻게든 시장에 첫발을 내디뎌야만 했다. 에릭슨은 처음엔 하이브리드형을 시장에 내놓는다. 기존 기술을 가져다 쓰되 일부를 디지털로 구현했다. 그리고 AXE 시스템은 앞으로 4년 동안 32개국에 도입된다.

1970년대 우리도 전화 적체가 심했다. 정책조차 완제품 도입, 기술 도입, 자체 개발로 오락가락했다. 몇 해인가 논란 끝에 자체 개발을 하기로 한다. 먼저 96회선짜리 1차 시험기가 제작된다. 그다음 필요 기술을 좀 더 채워서 200회선짜리 2차 시험기를 제작한다. 이런 저런 난관 끝에 작지만 독립 운용이 가능한 500회선짜리 3차 시험기가 완성된다. 이 기종으로 시험 운용을 하면서 TDX란 이름이 붙는다. 한국형 시분할 전전자교환기였다.
누군가는 혁신이 뭐냐고 묻는다. 그런 때마다 누군가 '당신에게는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되묻고는 한다. 공교롭게 우리가 기술 이전 조건으로 구매한 기종이 에릭슨의 AXE-10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 속삭임은 누차 주인공을 바꿔 가며 자신의 소리를 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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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