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칼럼]디지털 미디어 발전을 위한 미디어법 개편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ICT법경제연구소장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ICT법경제연구소장

방송법은 제1조 목적 조항에서 방송의 자유와 독립 보장, 방송의 공적 책임, 시청자의 권익 보호, 민주적 여론 형성, 국민문화 향상과 같은 사회적·문화적 가치를 제시한다. 모두 중요한 가치이지만 경제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다. 다시 말해 미디어법으로 방송법은 방송 미디어의 사회·문화적 가치에 초점을 맞춘 정책과 제도에 치중한 나머지 경제적 가치를 균형 있게 추구하지 못한다. 이로 말미암아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방송 미디어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대변되는 온라인 영상 미디어를 비롯한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의 거센 도전에 직면한 다채널 유료방송 미디어이다.

전파 미디어 시대에 처음 틀을 갖춘 방송법은 다채널 유료방송이 물꼬를 튼 영상 미디어 시대, 전송 신호 디지털화로 촉진된 디지털미디어 시대가 도래해도 목적과 이를 추구하기 위한 제도 및 정책 측면에서 획기적 변화가 없었다.

방송 미디어 분야에 시장과 산업 논리가 엄연히 지배하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시장에서의 공정경쟁, 방송사업자 간 공정한 거래 질서, 방송프로그램 이용자의 이익과 같은 경제적 가치에 대한 정책적·제도적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방송 미디어가 갖는 여론 형성의 힘을 중시하는 공익성·공공성 논리 앞에서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거나 적어도 사회·문화적 가치 및 경제적 가치의 균형을 모색하기 위한 제도 개선과 이를 실행하기 위한 입법은 후순위로 밀리기 마련이었다.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2020),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장기 방송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제안서'(2020),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유료방송 제도 개선방안'(2021), '방송미디어 중장기 법제정비 방안'(2022) 등 최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입법과제가 수반된 정책 제안이 잇따라 나왔다. 그러나 공영방송 거버넌스와 같은 어려운 과제에 막혀 이렇다 할 입법 논의로 이어지지 못했다.

현재 방통위가 추진하는 시청각미디어서비스 규제체계와 과기정통부가 추진하는 디지털미디어서비스 규율체계를 각각 기반으로 하는 법안이 준비되고 있다. 양쪽 모두 공영방송 미디어의 법적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케이블TV, 위성방송, IPTV와 같은 다채널 유료방송 미디어는 시장과 산업 현장에 새로운 디지털미디어로부터 갈수록 심한 경쟁 압력을 받고 있다. 실태조사를 통해서도 증명된다. 방통위의 '2022년 방송시장 경쟁상황 평가' 결과에 따르면 OTT 이용률은 72%, OTT 이용자 가운데 유료결제 이용자 비율은 55.9%를 각각 기록하며 지속적인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다채널 유료방송 미디어에 집중된 규제로 시장에서의 경쟁 여건이 평등하지 않다는 점이다. 다채널 유료방송 미디어에 대한 기존 규제는 양면 플랫폼 성격을 띠는 다채널 유료방송 사업자가 사업모델 기반 경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장애 요인으로 작용해 기술과 사업 혁신의 유인 및 능력을 저해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조기에 해소하기 위한 출발점은 다채널 유료방송 미디어와 온라인 영상 미디어 간 경쟁관계, 이를 둘러싼 미디어 생태계 구축 경쟁 과정에서 파생되는 참여 사업자 간 및 사업자와 이용자 간 거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입법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 것이다. 입법안은 공영방송 미디어를 다루는 법안과 별도로 우선 추진될 수도 있다. 디지털 미디어 영역에서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제도 정비의 시급성을 고려할 때 미디어의 다원성, 콘텐츠의 다양성과 같은 방송 고유의 공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라는 제한 원칙을 적용한다는 전제 아래 이제 미디어법 개편을 위한 실행에 나설 때다.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dshong@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