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심화·확산을 거듭하는 미래차 산업정책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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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이 패권 장악을 위해 산업정책을 강화하면서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중국이 세계 경제와 제조업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자 미국은 중국 고립화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 압력에도 외국 기업의 직접투자가 증가했으며, 제조업 생산도 3개월 연속 증가해 1분기 성장률이 4.1%에 이를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 미국의 조치가 오히려 자국 산업의 구조 고도화를 촉진하고 있다고 선전한다.

이에 질세라 미국은 2013년부터 추진해 온 리쇼어링 정책과 2017년 이후의 보호주의 정책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평한다. 최근 미국 정부는 '2022년 리쇼어링 계획 정보 보고서'를 통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으로 국내외 제조업체의 미국 내 투자가 증가, 전년 대비 53% 증가한 36만4000개의 일자리가 마련됐다고 분석했다. 이 가운데 53%의 일자리가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창출됐는데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의 고용 창출이 두드러졌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성과는 정부의 투자 유인과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조치 및 양질의 노동력으로 달성할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2010~2022년 아시아에 진출한 기업들의 리쇼어링이 전체 리쇼어링 기업에서 72%를 차지했으며, 아시아 기업들의 미국 내 직접투자도 유럽 기업을 추월해 48%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16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났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추세가 2024년까지 이어져 연평균 35만개에 가까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단지 노동력 부족이 리쇼어링과 외국인 직접투자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고, 물가 상승 및 자동화 투자 부진과 여타 국가에서의 산업 기반 강화도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력 부족은 제조기업 ABB의 설문 조사에서도 나타났다. 설문에 응답한 590개 자동차제조업체를 분석한 결과 130개의 북미 기업들은 3대 도전 요인으로 공급망 불안(70%), 원자재 및 부품 원가 상승(51%), 노동비용과 기능인력 부족(51%)을 꼽았다. 특히 북미 기업들은 노동력 부족이 유럽이나 아시아 기업에 비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세계 전기동력차 판매는 전년 같은 달 대비 10% 증가한 66만2400대로, 신차 시장의 11%를 차지했다. 지난해 세계 신차 판매에서 차지한 전기동력차 비중 13%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산뜻한 출발을 보였다. 미국 테슬라는 지난해 판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전기동력차 판매 세계 1위 자리를 중국의 비야디(BYD)에 빼앗겼지만 가격을 대폭 인하, 올해 1분기에 사상 최고의 생산과 판매 실적을 달성했다.

[ET시론]심화·확산을 거듭하는 미래차 산업정책

한편 독일에 이어 미국·중국·한국·일본 등이 올해 들어 자율주행 레벨4 수준, 즉 운전자가 운전석에 앉아 있어야 하지만 자동차가 스스로 주행하고 긴급상황에서만 운전자가 개입하는 자율주행차의 특정 구간 시험주행을 확대·허용하고 있다. 자동차업체들은 차량에 탑재하는 소프트웨어(SW) 재구성을 통해 차량 기능을 변경할 수 있는 SW 정의 자동차의 개발도 가속하고 있다.

이처럼 자동차산업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자 주요국 정부는 자동차산업 정책을 경쟁적으로 수립, 운용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IRA 시행령 발표에 이어 4월 18일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전기동력차 모델을 발표할 계획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단기적으로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 전기차 모델 수는 감소할 수 있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자동차업체들의 전기차 관련 투자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까지 자동차업체들이 발표한 전기차 생산 계획을 분석해 볼 때 2025년 전기차 생산능력은 미국이 500만대에 육박하고 캐나다와 멕시코도 각 100만대로의 증가가 예상된다.

미국 정부의 조치로 미국 내 전기차 광물 관련 예정 투자액만 해도 560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미국이 IRA를 제정한 배경에는 자국 내에 전기차 생산 및 공급 기반을 구축해서 소비자에게 적정 가격의 전기차를 공급하고, 만성적인 자동차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는 한편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해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함이다. 미국은 1988년에도 자국 제조업체의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기 위해 '종합무역 및 경쟁력 법'을 제정, 체계적인 지원 체제를 마련한 바 있다.

미국과 IRA 관련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은 배터리 가치사슬과 트랙션 모터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다. EU 자동차업계는 광업·제련·재활용과 관련해 에너지비용 인하, 신속한 인허가 절차, 현실적인 환경 기준과 숙련 근로자 육성 등 투자 환경 개선을 EU 집행위와 의회에 요구하고 있다.

또한 전략적 핵심 광물의 채굴·제련·정제 관련 역내 생산능력을 확충하고 관련 규제를 철폐하며 핵심 광물 보유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 및 파트너십 체결을 통해 원자재 공급망 안정화와 조달처 다변화를 추진할 것을 건의했다. 나아가 재활용 원자재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순환 경제 역할을 강화하고 원자재 조달과 관련해 인권과 환경보호 관련 국제 규율을 준수하며, 재활용·전략적 핵심 광물의 수거 관련 연구개발(R&D)을 강화해 공급망 전반에 걸친 혁신 활동을 지원하라고 요청했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해 EU 집행위는 재생에너지와 청정기술 개발 지원 보조금을 확대할 계획이다. 독일은 유럽판 IRA의 도입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또 독일은 이탈리아, 폴란드, 체코 등과 공동 전선을 구축해 EU가 2035년에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더라도 기존 내연기관에 사용할 수 있는 e연료(fuel) 등 친환경 합성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의 조건부 판매 허가를 받아냈다.

이에 따라 2035년 이후에도 친환경 내연기관차의 판매가 가능하지만 전동화를 되돌리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합성연료 사용 내연기관차가 경제성, 기술적 장벽 등으로 보완적인 기능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합성연료차의 허용을 주장해 온 독일의 BMW와 포르쉐 등도 전기동력차 개발과 상용화를 가속하는 상반된 행동을 보인다.

일본 정부는 하이브리드카가 IRA의 세액공제 대상이 아니고, 자국 기업의 전기동력차 생산이 부진하지만 오랜 대미 통상협상 경험을 활용해 대미 배터리 수출을 촉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일본은 미국과 FTA에 준하는 협정을 체결, 일본에서 채굴하거나 가공한 핵심 광물 사용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도 IRA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중국 정부와 기업들은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이 가중되자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중국 정부는 일본이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을 통제하자 대일 통상압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장은 에둘러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하지 않기를 원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중국 정부는 또 미국 반도체업체 마이크론에 대해 사이버보안 조사에 착수했다. 이 밖에도 중국 정부는 자동차 수요가 부진하자 신에너지자동차(NEV) 구매 세제 혜택의 재도입과 자동차 수출촉진정책 및 경쟁력 강화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 자동차업체들은 전기차에 이어 자율주행차 개발과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폭스바겐·포르쉐·BMW는 중국 시장에 적합한 차별화한 전략을 수립해 운용하고 있다.

이처럼 자동차산업 경쟁 환경이 급변하자 우리 정부는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 계획'에서 2030년까지 전기동력차 450만대 보급 계획을 재확인했다. 배터리전기차(BEV)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PHEV) 보급 물량을 362만대에서 420만대로 늘렸다. 다만 수소전기차(FCEV) 보급 목표는 88만대에서 30만대로 대폭 줄였다.

또한 우리 정부는 첨단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15개 국가첨단산업단지를 지정했는데 이 가운데 네 곳이 미래차 관련 클러스터다. 정부는 국가전략기술 기반 미래소재 확보 전략도 발표해 첨단 모빌리티와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로봇 등 국가전략기술 산업 분야에서 100개 첨단 소재 개발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미래차 특별법 제정과 국가첨단전략산업 지정을 통해 조세 감면 등 포괄적인 지원도 실시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미래차 산업은 시장경제에 맡겨서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신산업 초기 단계에서 정부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관련 법·제도 제·개정도 필요하지만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에 따라 막대한 자금, 인력 양성, R&D, 관련 하부구조 등과 관련한 기존 지원시스템의 개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래차 시장에서 돈과 사람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안정적 공급망 구축과 지속 가능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산·학·연·관과 노·사·민·정이 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 lyg8779@hanmail.net

〈필자〉이항구 원장은 1987년부터 산업연구원에서 자동차산업 연구를 담당했다. 2020년부터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면서 호서대 조교수를 겸하다가 올해 2월 제9대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에 임명됐다. 친환경차 보급뿐만 아니라 기업 간 협업법 제정과 상생 결제 시스템 구축에 기여했다.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 국토교통부 자율주행자동차 융복합 미래포럼 위원, 중소벤처기업부 규제 특구 자문위원, 환경부 WTO 무역과 지속 가능 환경협의체(TESSD) 대응 TF 위원, 인베스트 코리아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