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마이크론이 올해 SK하이닉스와 맞먹는 설비투자(CAPEX)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은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3위인 마이크론이 선발주자들과 비등하게 CAPEX를 투자하는 건 이례적으로, 기술적 측면 뿐만 아니라 생산능력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빠르게 추격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2025 회계연도(2024년 9월~2025년 8월) CAPEX 전망치로 140억 달러(±5억 달러, 약 20조4200억원)를 제시했다. 이는 전년 대비 72.8%나 증가한 금액이다. 기존 최대치였던 2022 회계연도 119억8000만 달러를 뛰어넘는 액수다.
특히 SK하이닉스에 버금가는 규모다. 시장조사업체인 테크인사이츠와 삼성증권 등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올해 CAPEX는 150억 달러(약 21조7500억원). 지난해 CAPEX 규모(약 16조5000억원)보다 늘어났지만 마이크론이 투자금을 압도적으로 늘려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마이크론 사정에 밝은 업계 한 관계자는 “엔비디아 AI 반도체 생태계 내 HBM 공급사는 현재 SK하이닉스, 마이크론 2강 체제”라며 “마이크론이 SK하이닉스 대비 빠르게 생산능력을 확대해 공급량을 늘리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론이 SK하이닉스만큼 투자하는 건 드문 경우다. 2022년 SK하이닉스가 투자를 큰 폭으로 줄여 마이크론보다 적었던 적은 있었지만 두 회사가 동시에 투자를 늘리고 있는 시점에서도 CAPEX가 비등한 건 이례적이다.
HBM에서 자신감이 생긴 마이크론이 기회를 잡기 위해 공격적 투자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마이크론은 증설에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선 지난해 인수한 AUO 대만 공장 두 곳의 리모델링을 끝내고 올해 가동을 시작한다. AUO는 디스플레이 업체지만 클린룸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이크론이 인수했다. 마이크론은 이 곳에서 HBM 제조에 필요한 웨이퍼 테스트와 패키징을 추진한다.
또 2023년 착공한 인도 구자라트 패키징 공장도 올해부터 제품을 출하할 예정이며, 2027년을 목표로 싱가포르 첨단 패키징 공장과 일본 히로시마 D램·HBM 생산시설도 준비 중이다.
이 외에도 미국에서는 미국 아이다호주, 뉴욕주에 500억 달러(약 73조원)가 투자되는 대규모 D램 생산시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일 정도로 동시다발적 투자에 나서고 있다.
마이크론의 투자 확대는 국내 메모리 업계 부담이다. 중국 메모리 업체가 레거시(구형) D램 가격을 끌어내리는 상황에서 선단 D램과 HBM에서의 경쟁마저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HBM 시장 내 마이크론 점유율은 2023년 기준 9%로 올해 20%까지 확대하는 게 목표다.
전상윤 테크인사이츠 한국지사장은 “마이크론이 당장 규모에서 한국 메모리 업체를 앞지르긴 어려울 것이나 의욕적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SK하이닉스도 M15X, 용인반도체클러스터 투자를 진행 중이고 기존 팹도 HBM 용도로 일부 전환해 대응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