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21개국 “WTO 다자 체제 중요” 공동성명 극적 합의...정인교 “제주의 기적”

산업통상자원부는 15~16일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제주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APEC 통상장관회의를 개최했다. 사진: 산업부
산업통상자원부는 15~16일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제주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APEC 통상장관회의를 개최했다. 사진: 산업부

21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원국이 다자무역체제 회복과 인공지능(AI) 기반의 통상 환경 조성을 골자로 하는 공동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미국·중국 등 주요국의 입장차로 채택이 힘들다는 관측이 따랐지만 종료 직전 극적 합의에 성공했다. 오는 10월 열리는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한층 결속력 있는 국가 간 협력을 모색할 기반이 마련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6일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제주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열린 APEC 통상장관회의에서 21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APEC 회원들은 이번 회의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약화한 현 글로벌 통상환경에 우려를 공유했다. 회원국이 함께 무역 관련 협상을 벌이고, 무역 규범을 만들고, 분쟁을 해결하는 다자무역에 기반한 WTO 체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회원국은 무역 이슈 진전을 위해 글로벌 무역시스템의 법적 토대를 제공해온 WTO가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WTO에서 현대 통상 이슈 논의를 심화하려는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또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며 기업 친화적인 투자환경 조성을 위한 APEC의 의지 또한 성명을 통해 재확인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WTO 사무총장은 “WTO가 다시금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무역 환경을 조성하는 데 적실성 있는 기구로 거듭나겠다”면서 WTO가 포괄적이고 의미 있는 개혁을 달성할 수 있도록 APEC 통상 장관의 정치적 지지를 촉구했다. 이에 내년 3월 예정된 제14차 WTO 각료회의(MC-14)까지 관련 논의를 지속하기로 했다.

올해 APEC 의장국인 한국이 이번 회의에서 제안한 'AI 통상(AI for Trade) 이니셔티브'도 회원의 폭넓은 관심과 지지를 확보했다. 한국은 △관세·통관 행정에서의 AI 도입 확대 △각 회원의 다른 AI 정책에 대한 민간의 이해도 제고 △AI 표준 및 기술에 대한 자발적인 정보 교환 등 3대 추진 과제를 제안해 합의했다했다. 후속 조치로 올해 8월 인천에서 'AI 통상 민관 다이얼로그'를 열어 3대 과제 이행방안을 구체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APEC 회원국은 AI를 포함한 디지털 경제가 역내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중요한 동력임을 재확인했다. 종이 없는 무역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고, 디지털 격차 해소, 디지털 인프라 강화, 데이터 이동, 소비자 신뢰 제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을 지속하기로 했다.

공급망 분야에서도 진일보한 협력을 도출했다. 최근의 통상 환경 급변에 따른 공급망 재편과 기후 위기라는 중대한 도전에 대응하여 보다 회복력있고 지속가능한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한 역내 협력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한국은 이번 통상장관회의 계기에 지난 9일 민관 합동 대화인 '지속가능한 공급망 포럼'을 개최하고 향후 AEPC 논의에 범 산업에 걸친 민간 참여 확대를 제안해 회원국의 지지를 확보했다.

또한, 물적·제도적·인적 연계성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APEC 연계성 청사진' 이행에 대한 의지도 재확인했다. 특히 인적 연계성과 관련, 비즈니스 교류 활성화를 위해 APEC 가상 기업인 여행카드 도입을 지속 확대하기로 했다.

APEC 회원국의 이날 합의는 극적으로 이뤄졌다. 애초 미·중 등 주요국 간 입장 차가 극명했고 공동성명 작성 과정에서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지난 8일부터 시작한 실무 협상 초기 단계에서부터 서로의 입장 차이가 극명했다는 게 산업부 설명이다.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은 “글로벌 통상 환경에 대한 회원의 첨예한 입장차가 있는 상황에서 합의한 것은 의장인 저를 비롯해 20개 회원국 장관과 100여명의 협상팀에게 큰 도전이었다”면서 “평화와 신뢰를 중시하고 공동체 정신을 철학으로 삼은 제주에서 치열하게 토론하고 고민해 기념비적인 합의를 도출한 것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제주의 기적이라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성과로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참여하는 회원국 정상도 한층 구체적이고 결속있는 협력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합의 중 일부가 APEC 정상회의의 의제, 공동성명으로 반영될 공산이 크다는 게 산업부의 설명이다.

정 본부장은 “글로벌 통상환경이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서 APEC 회원이 협력해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매우 긍정적인 시그널을 세계 시장에 보내는 것”이라면서 “10월에 있을 APEC 정상회의를 의미 있게 만들려면 공동성명이 나와야 했고 우리 경제를 위해서도 합의가 필요했다. 내용도 알차야 한다는 욕심을 갖고 20개 회원국을 설득했다”고 덧붙였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