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호 100대사건]〈28〉이동통신시장 경쟁체제 본궤도

1996년 6월 10일 당시 이석채 정보통신부 장관이 PCS사업자 선정을 발표하고 있다. (자료=전자신문DB)
1996년 6월 10일 당시 이석채 정보통신부 장관이 PCS사업자 선정을 발표하고 있다. (자료=전자신문DB)

1996년 6월 10일 정보통신부는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를 선정했다. PCS 사업자 선정은 단군 이래 최대 이권사업으로 회자되며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정부는 1995년 통신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본 정책을 발표하고 PCS 사업자 선정에 착수했다. 소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일컫는 PCS 사업권 수주를 위해 대기업은 적과의 동침까지 불사하며 합종연횡을 거듭했다.

당시 LG그룹이 PCS 사업 참여를 선언했고 이듬해인 1996년 현대, 삼성, 대우, 한솔, 금호, 효성, 데이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이 속속 출사표를 던졌다. 특히 현대, 삼성, LG, 대우의 4대 재벌이 3장의 PCS 사업권 가운데 한국통신에 할당된 한 장을 제외한 나머지 두 장을 놓고 경합을 벌였다. 이후 1996년 3월 정통부가 사업권 배정방식을 △한국통신 △통신장비 제조업체군 △통신장비 비제조업체군의 3개 사업군으로 수정하고 각 군에 사업권을 한 장씩 할당하기로 하면서 큰 혼란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4대 재벌은 사업권 한 장을 놓고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반면 사업권 획득이 희박했던 한솔 등 중견그룹과 중소기업협동중앙회는 쾌재를 불렀다.

정통부는 PCS 사업자로 한국통신을 비롯해 통신장비군에서 LG, 비장비군에서 한솔을 PCS 사업자로 선정했다. 이듬해 1월 PCS 신규사업자 식별번호로 한국통신프리텔 '016', 한솔PCS '018', LG텔레콤 '019'를 부여했다.

PCS 3사 출현은 이동통신 요금 인하, 서비스 품질 향상, 휴대폰 산업 발전 등 효과는 물론 이동통신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