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지식재산처, 기술주권 지키는 사령탑 돼야

홍장원 대한변리사회 고문
홍장원 대한변리사회 고문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이 “특허청을 지식재산처로 승격해 특허와 기술 거래 시장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지식재산을 업으로 살아온 필자로서는 크게 환영할 일이다. 한국은 기술 강국이라 자부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기술도입 후 여전히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국가전략기술은 관리 부실로 유출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선진국의 기술공세와 개도국의 추격 사이에서 한국의 기술 경쟁력은 흔들리고 있다. 이 상황에서 지식재산처는 기술주권 회복의 사령탑이 되어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원전 분야다. 우리는 원전 기술을 세계 최고라 자랑했지만, 웨스팅하우스와의 최근 계약 조건은 종속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도입한 지 50년이 지났음에도 앞으로도 원전 1기당 1조 원 이상을 로열티와 물품대금 등을 지급해야 하고, 수출 지역 제한과 사전 협의 의무까지 따라붙는다. 조선업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시장을 장악하고도 LNG 화물창 원천기술을 보유한 프랑스 GTT 회사에 매년 1조 원 넘는 로열티를 내고 있다. 기술력은 세계 최고지만 원천기술을 쥐지 못하면 결국 종속적 관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전략기술의 유출이다. 반도체 패키징 공정의 '캐필러리'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갈 뻔했고, 대기업 전직 직원이 2차전지 핵심 기술을 빼돌리다 적발됐다. 최근 5년간 해외로 유출된 산업기술은 111건, 피해액은 무려 23조 원으로 추정된다. 이 중 36건은 국가핵심기술이었다. 기술종속은 장기화되고, 기술유출은 폭증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패권 경쟁에서 살아남기는커녕, 한국의 미래 산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일본은 이미 '오픈앤클로즈(Open & Close)' 전략으로 대응해왔다. 핵심 기술은 철저히 보호하고, 표준이나 규격 기술은 개방해 시장을 장악하는 방식이다. 소니의 베타멕스 방식의 VCR,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엔진이 대표적이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기술의 개방과 보호를 병행하며 세계시장 헤게모니를 유지했다. 우리도 이제 한국형 오픈앤클로즈 전략을 국가 차원에서 수립해야 한다.

지식재산처가 출범한다면 첫째, 산업별로 개방과 보호를 구분한 '기술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특허풀을 산업분야별로 조성하고, 기술계약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불공정·종속적 계약을 차단해야 한다. 셋째, 정부와 공기업의 기술도입·이전 계약은 지식재산처가 사전 심사하도록 해야 한다. 넷째, 'IP 세이프가드 센터'를 설치해 퇴직자 기술 반출, 사이버 해킹, 해외 계약상의 유출까지 통합 관리해야 한다.

지식재산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기술을 많이 가진 나라가 아니라, 기술을 지켜낼 수 있는 나라만이 미래를 이끈다. 기술주권이 흔들리는 순간 국익도 함께 무너진다. 지식재산처가 대한민국의 기술주권 회복을 이끌 국가 전략 사령탑으로 서길 기대한다.

홍장원 대한변리사회 고문 patenet114@hanapa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