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칼럼>장거리 버스 운전기사의 자그마한 지혜

조동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석좌교수 겸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
조동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석좌교수 겸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

미국 조지아 주 아틀랜타에서 어느 대학 총장과의 회의를 마친 주말, 동료 교수와 나는 플로리다 포트마이어스에 있는 경영대학 학장과의 .다음 회의를 위해서 항공편을 예약하려 했다.

아뿔사, 아틀랜타에서 포트마이어스로 향하는 모든 비행편이 이미 만석이었다. 마침 시간이 넉넉했던 나는 버킷리스트에 적어두었던 꿈을 실현해 보기로 했다. 바로 '미국에서 그레이하운드 버스로 장거리 여행하기'였다.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의 무박 5일 여행은 아니지만, 하루 밤을 달리는 여정도 충분히 매력적일 터였다. 동료 교수의 동의를 얻은 나는 저녁 9시에 아틀랜타를 출발해 다음날 낮 12시 반에 도착하는 15시간 반짜리 버스표를 인터넷으로 예매했다.

아틀랜타 인근 대학에서 경영학 교수로 재직하다 은퇴 후 목회 활동을 하고 있는 후배 교수에게 부탁해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그 교수는 그레이하운드 버스가 있는 아틀랜타 다운타운에 최근 총기사고가 났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저녁은 물론 대낮에도 근처에 가지 말라”는 충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조심하겠다”는 약속 끝에, 결국 그는 우리를 버스 터미널까지 태워다 주었다.

출발 10분 전 도착한 다운타운은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여름 저녁 9시라 하늘이 아직 환했던 덕이기도 했다. 버스에 짐을 실은 뒤, 우리를 확인한 후배 교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버스는 좌석 40석 규모의 장거리용으로, 화장실이 달린 평범한 차량이었다. 주말이라 만석이었고, 한국인은 물론 동양인도 우리뿐이었다. 운전자는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으로, 듬직한 체구가 인상적이었다.

[에듀플러스]<칼럼>장거리 버스 운전기사의 자그마한 지혜

버스는 2시간마다 정차해 15분간 휴식을 취했다. 이는 졸음운전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일 터다. 승객 입장에서 보면 장단점이 있었다. 장점은 다리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장거리 비행처럼 오랜 시간 좁은 공간에 갇혀 있으면 혈액순환이 원활치 않아 경련이 일기 쉽지만, 2시간마다 다리를 펴니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되었다. 단점은 숙면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2시간마다 깼다 다시 자는 탓에 피로가 누적됐고, 승객들이 통화하거나 떠드는 소리로 소음이 커졌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들리던 잡담 소리가 점점 신경을 거슬렀다. 그때 버스가 길가에 멈춰 섰다. 운전기사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여러분, 통화나 대화를 하시면 버스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험상궂은 인상의 젊은 승객이 전화를 계속했다. 누군가 나서서 제지했다간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잠시 후, 운전기사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여러분 모두 집에 가서 가족을 만나고 싶으시죠? 저도 사랑하는 가족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버스는 실내가 시끄러우면 엔진이 자동으로 꺼진답니다. 제가 빨리 운전을 끝내고 저를 애타게 기다리는 예쁜 딸을 볼 수 있게 도와주세요.”

순간, 차 안에 웃음이 터졌다. 문제의 승객도 쓴웃음을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 후 종착역에 도착할 때까지 버스 안은 고요했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는 설렘 속에 여정을 마쳤다.

나는 소박한 버킷리스트를 이룬 기쁨과 함께, 운전기사의 한마디에서 묻어난 삶의 지혜에 감탄했다. 여행이야말로, 공자나 소크라테스 못지않은 현자와 만날 수 있는 값진 배움의 길임을 다시금 느끼면서…

조동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석좌교수 겸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 dscho123@gmail.com

◆조동성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서울과학종합대학원 발전자문위원 겸 석좌교수, 국제연합훈련조사원 SDG경영대학 이사장도 맡고 있다. 서울대 국제지역원장·경영대학장, 북경 장상강학원 전략전공 교수, 국립인천대 총장, AI경영학회 창립회장, 국제경영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이지희 기자 eas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