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왜? 재정구조 혁신인가

임기근 기재부 2차관.
임기근 기재부 2차관.

“한국의 완화적인 재정정책은 정책 여력을 고려할 때 저성장 국면에서 적절한 조치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보고서에서 인용한 문구가 아니다. 최근 IMF 미션단이 우리 정부의 정책을 평가한 내용이다.

그렇다. 우리 정부와 IMF는 우리 경제 현실과 정책 처방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다. 경제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성장 둔화, 소비 위축, 인구감소와 기술전환이 맞물리며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소상공인과 저소득층의 어려움은 커지고, 저출생·고령화, 탄소중립, 인공지능(AI) 등 산업경쟁력, 양극화, 지역소멸 등 구조적 난제도 산적해 있다. 대외적으로도 공급망 재편, 국익우선주의 심화 등으로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나라 재정도 방향을 분명히 세우고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재정은 두 가지 가치를 함께 지향해 왔다. 한 축은 성장과 민생안정을 뒷받침하는 본연의 역할이고, 다른 한 축은 미래 세대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재정이 평시에는 당면한 경기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경제의 기초체력을 다지는 기반이 되고, 경제 위기 시에는 국민의 삶을 지키는 방파제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치가 모두 충족돼야 한다.

우리 재정은 두 가치를 잘 조화시켜 온 역사적 경험과 전통이 있다. 때로는 재정 총량이 늘어나는 속도를 최대한 억제하기도 하고, 교통세, 농어촌특별세와 같은 세금을 만들어 새로운 지출 소요를 충당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도 했다. 반면에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펜데믹과 같은 굵직한 위기 때는 과감하게 곳간을 열어 경제의 추락을 막고 회복의 불씨를 살리기도 했다.

우리 경제는 단기적으로도 중장기적으로도 위기 국면이다. 당장의 경기는 간신히 회복의 온기를 보이고 있지만 온기가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가기에는 아직 힘에 부친다. 저출생 등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대응은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정부는 당면 경기 회복을 지원하고, 근원적인 문제 해결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년 예산을 금년보다 8.1% 늘어난 728조원 규모로 편성했다. AI·연구개발(R&D)·초혁신경제 등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분야에 재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투자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했다.

그러나 단순한 확장재정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재정을 담보할 수 없다. 정부 씀씀이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낭비적인 지출을 걷어내 국민부담을 줄여야 한다. 최종적으로는 재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단단하게 해야 한다.

재정구조 혁신 TF 조직도.
재정구조 혁신 TF 조직도.

최근 정부는 '재정구조 혁신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고, 재정 전반에 걸쳐 고강도 혁신을 추진하고, 성과를 중심에 두고 재정을 운용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지출 여부와 규모를 정부가 판단하는 재량적인 사업은 꼭 필요한 사업인지를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법적으로 지출하도록 강제된 의무지출 항목도 경제사회 여건이 달라져서 폐지하거나 줄일 여지가 없는지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지출되고 있는 재정사업들에 대한 성과도 제대로 평가하고, 그 결과를 다음 예산에 철저하게 환류해야 한다.

수입 측면도 예외가 아니다. 시중의 유동성은 부족하지 않은데 정부가 쓸 수 있는 자원에는 한계가 있다. 민간자금을 공공사업에 활용하는 민자사업도 지금은 그 대상이 주로 사회간접자본(SOC)과 환경 영역에 치우쳐 있는데 AI 등 신산업 분야 등에도 민간자금이 흘러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세체계에 광범위하게 스며들어 있는 비과세·감면 항목도 효과가 있는지를 철저하게 따져보고, 부담금과 같은 국세외 수입에 대해서도 체계적인 관리 방안을 만들어 미수납액을 줄여야 한다.

장기적으로 재정전망을 해보면, 사회안전망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연금과 사회보험도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부당수급이나 과다 이용을 줄이는 지출 효율화 노력과 아울러 부담 수준의 적정성을 고민하는 양방향 접근이 필요하다.

공무원들의 혁신 아이디어에는 한계가 있다. 관계부처와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TF를 혁신으로 끌고 가는 기본 플랫폼으로 삼되, 상시적으로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도 활성화할 것이다.

재정구조 혁신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지켜내기 위한 필요조건인 것은 분명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경제성장이 중요하다. 경제가 성장해야 정부 수입도 늘고, 재정수지도 개선되고, 국가채무 비율도 낮출 수 있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지키는 왕도는 경제성장인 것이다. 정부는 AI 대전환을 성공시키고, 규제를 혁파하고, 투자를 활성화하고, 혁신적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노력의 고삐도 늦추지 않을 것이다.

혁신에는 필연적으로 고통과 불안정이 따른다. 모든 재정구조 혁신 사안이 모든 국민과 이해관계자의 찬성과 만족을 끌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정부지출과 조세 지원에는 수혜자가 있고, 본인의 혜택이 줄어드는 개편을 선뜻 환영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부작용을 줄이는 대안을 고민할 것이다. 국민께는 한편으로는 매서운 감시자의 눈매를,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와 공감을 당부드린다. 가계, 기업, 정부 모두가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임기근 기획재정부 2차관

〈필자〉전남 해남 출신으로 광주 송원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36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기재부 예산총괄과장, 예산정책과장, 복지예산과장, 경제예산과장, 예산총괄심의관 등 예산실 주요 보직을 거쳤다. 공공정책국장과 정책조정국장, 재정기획심의관도 역임하며 재정 및 정책 분야에서도 성과를 냈다. 재정관리관을 거쳐 조달청장을 지냈으며 2025년 기재부 2차관에 선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