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제2 의정갈등'은 안된다

정부가 의료대란 종식을 선언한지 한 달도 채 안돼 또 다시 의정 갈등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정부의 성분명 처방 허용, 지역의사제, 검체검사 위·수탁체제 개편 등 정부 보건의료 정책에 의사단체가 강하게 반발하며 투쟁 수위를 높이고 있다. 1년 넘게 불편과 두려움 속에 지냈던 국민은 의료계의 엄포에 또 다시 불안에 떨고 있다.

의사단체가 반대하는 대표 정책인 성분명 처방 허용은 의사가 약의 성분 이름으로 처방을 내리고, 약사는 해당 성분의 의약품 중 하나를 선택해 조제하는 제도다. 기존에는 의사가 '타이레놀'을 처방했다면 제도 시행 후 성분명인 '아세트아미노펜'으로 처방하게 된다. 코로나19 대유행처럼 전국적으로 타이레놀 품귀현상이 발생할 시 약사는 동일한 성분으로 만들어진 다른 약을 환자에게 줄 수 있다.

의사단체는 성분명 처방 제도가 의사의 처방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환자 안전에도 심각한 위협을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같은 성분이라도 환자한테 맞는 약을 의사가 선택해서 처방하고 있는데, 제도가 시행되면 이런 절차가 없어져 환자 안전에 위협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약국 앞을 지나는 시민들.
서울의 한 약국 앞을 지나는 시민들.

이들은 지역의사제, 한의사 엑스레이 허용, 검체검사 위·수탁체제 개편 등과 묶어 대표적 악법으로 규정, 범의료계 국민건강보호 대책특병위원회 구성과 궐기대회까지 나서며 반발하고 있다.

연일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는 의사단체의 주장에 명분은 물론 설득력도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성분명 처방 의무화는 애초에 '수급이 불안정한 필수의약품'에 한정했다. 우리나라의 낮은 약가 탓에 필수의약품 공급을 중단하는 사례가 늘면서 수급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로 성분명 처방을 꺼낸 것이다.

특히 미국과 일본 등에선 의약품 수급 관리를 위해 이 제도가 이미 시행 중인 것을 고려할 때 의사단체의 반대는 명분이 약하다. 결국 의사단체가 악법이라고 규정한 성분명 처방, 한의사 엑스레이 사용, 검체검사 위·수탁체제 개편 모두 환자 안전을 명분으로 내걸고 있지만 의사들의 기득권 사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의사단체들은 정부가 제도를 강행할 경우 '제2의 의정사태'까지 나올 수 있다는 발언까지 하며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2년 가까이 지속된 의정갈등으로 전공의들이 이탈하며 여전히 대형병원의 진료, 수술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응급실 역시 작년 한해 전년 대비 이용률이 19%나 감소하며 '뺑뺑이'가 현실화됐다. 초유의 이른 독감 유행, 코로나19 환자 지속 증가 등으로 병원 이용이 더 많아진 요즘 국민 불안은 더 고조된다.

의사단체의 투쟁에 어느 때보다 국민 피로도가 극심하다. 성분명 처방은 필수의약품 수급 불안을 해소한다는 점에서 시행이 필요하다. 또 같은 성분이라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약 처방을 유도해 의료비 절감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다만 그간 정부와 의료계 갈등으로 신뢰가 무너졌다는 점에서 이 제도 시행에 따른 다양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양측이 진정성 있는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