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 선진국이 외국인투자(FDI)를 단순한 경제 활동이 아닌 '경제안보'의 첫 관문으로 규정하며 심사 강도를 높이고 있다. 외투 확대를 추진 중인 우리나라 역시 글로벌 흐름에 부합하는 정교한 안보리스크 관리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무역협회가 20일 공개한 '최근 외국인투자기업의 수출입 및 주요국 심사 동향' 보고서을 보면, 2024년 기준 수출 실적 1만달러 이상 기업 가운데 외투기업은 2531개사(6.4%)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이 낸 수출액은 999억달러로 전체의 15.2%에 달했다.
국내 기업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출 기여도다. 반도체·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서도 외투기업은 소재·부품·장비의 수입대체, 공급망 다변화, 제3국 시장개척 등 전략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일본계, 미국계, 싱가포르계 기업이 상위권을 차지한 가운데, 독일·호주·영국계 기업들도 국내 생산기지 확대에 기여했다.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 각국이 외투기업 유치에 달려들고 있지만, 최근 보호무역주의가 강화하면서 안보리스크 강화 역시 전 세계적 흐름이 됐다.
특히 세계 주요국은 외투를 '경제안보'의 핵심 변수로 재정의하며 심사 권한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재무부 장관이 주재하는 CFIUS(외투위원회)를 중심으로 외투가 안보·공급망·기술 패권에 미칠 영향을 촘촘히 들여다본다. 영국은 내각부·총리실 산하에 투자안보국(ISU)을 두고 주요 인수·합병(M&A)을 실시간 모니터링한다. 캐나다 역시 이미 승인한 거래라도 국가안보상 위협이 확인되면 영업중단이나 청산까지 명령할 수 있도록 제도를 고도화했다.
실제 미국은 2020년 중국계 기업이 보유한 소프트웨어업체 '스테이엔터치' 지분 매각을 요구했다. 영국 정부는 2022년, 중국계 자본이 다수 참여한 네덜란드 넥스페리아가 웨일즈 반도체기업 뉴포트 웨이퍼를 인수한 건을 뒤늦게 심사해 최종 지분매각을 명령했다. 캐나다도 2025년 중국 CCTV 기업 하이크비전(Hikvision)의 현지 영업 중단을 지시하며 강도 높은 심사 기준을 입증했다.
'경제안보'라는 이름 아래 외투가 과거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걸러지고 있는 흐름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우리도 최근 제도 손질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해 외국인투자촉진법 시행령을 개정해 국가안보 위해 가능성이 의심되는 투자를 외국인투자위원회 심의 대상으로 확대했다. 필요할 경우 90일 심의를 거쳐 지분 양도 등 후속조치를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외국인이 국내에 이미 진출한 외투기업의 지분을 확보해 실질적 통제권을 갖게 되는 '간접투자'까지 안보심의 대상에 포함하는 외촉법 개정안이 올해 두 차례 발의됐지만, 아직 소관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정희철 무협 무역진흥본부장은 “최근 넥스페리아 사례처럼 외국인투자는 개별 기업을 넘어 공급망·기술경쟁·국가안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며 “투자 유입 확대와 안보 고려라는 두 축을 절묘하게 조율하려면 제도적 완결성과 운용 경험을 함께 쌓아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