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기업의 해외투자를 더 이상 자율에 맡기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해외투자가 국내 산업과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만큼, 투자 검토 단계부터 국가산업전략의 관점에서 모니터링하고 필요하면 지역 투자로의 전환을 유도하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대미 투자가 급증하는 상황을 고려해 해외투자를 '사전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17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과거에는 해외 투자가 기업의 자율적인 영역이었으나, 최근에는 이 같은 투자가 국내 산업과 경제 전반에 매우 큰 영향을 주고 있다”며 “그동안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기업들의 해외 투자를 산업 전략의 관점에서 모니터링하고 관리해 나가고자 한다”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해외투자를 단순한 개별 기업의 경영 판단이 아니라 국가 산업 구조와 직결된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특히 비용 절감형 해외투자를 겨냥했다. 인건비·규제 회피 등을 목적으로 한 해외 이전이 늘어나면서 국내 제조 기반과 지역 산업이 동시에 약화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김 장관은 “비용 절감형 해외 투자 프로젝트에 대해 사전에 지방정부에 투자설명(IR) 기회를 제공해 국내, 그중에서도 지역 투자로의 전환 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해외로 나가기 전에 국내가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정책적으로 한 번 더 점검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가 이런 구상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그간 '투자는 기업 자율'이었다. 정부가 개입한 것은 외환 관리 차원의 신고 대상이거나, 국가 핵심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안보 심사 영역뿐이었다. 국내 산업과 지역 경제 차원에서 해외투자를 사전에 관리하진 않았었다.
하지만 최근 급변한 글로벌 산업 환경에 맞춰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김 장관 판단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보호무역 강화와 공급망 재편 속에서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가 급증했고, 그 여파로 국내 제조업 공동화와 지역 소멸 우려가 동시에 커졌다는 것이다. 산업부 내부에서 “마더팩토리 없는 해외투자는 결국 우리 산업 경쟁력을 약화한다”는 문제의식도 깔려있다.
이번 정책의 핵심은 '사전 개입'이다. 이미 확정된 해외투자를 되돌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검토·기획 단계에서부터 산업 전략의 관점으로 들여다보겠다는 뜻이다. 해외투자 규제나 제한으로 해석하는 것도 경계했다. 기업의 해외투자 자체를 막기보다는 국내 산업과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고려해 방향을 조정하겠다는 설명이다.
다만 우려도 적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의 '모니터링'이 새로운 규제나 간섭으로 비칠 수 있다. 해외투자 검토 과정에서 정부의 판단이 개입될 경우 의사결정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