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공학한림원이 인공지능(AI) 반도체를 '국가 전략 자산'으로 규정하고, 기술 주권 확보를 위한 범국가적 총력전을 주문했다. 이를 위해 대통령이 관련 정책을 직접 챙기는 컨트롤타워 신설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한국공학한림원은 17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AI 반도체 강국 도약 가이드라인'을 주제로 반도체특별위원회 포럼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5대 분야 10대 정책 과제를 발표했다.
이날 한림원은 'K-AI 반도체 강국 가이드라인'을 통해 △생태계 컨소시엄 및 실증 플랫폼 구축 △전략적 R&D △연구·상용화 기반 강화 △인재 양성 △거버넌스 구축 등을 5대 핵심 분야로 꼽았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거버넌스 개혁이다. 한림원은 대통령 산하에 'AI 반도체 육성위원회'를 설치하고, 공공과 민간의 흩어진 연구 역량을 결집할 'AI 반도체 기술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기업과 인재를 아우르는 파격적인 제안도 이어졌다. 안현 SK하이닉스 사장은 기업 간 경계를 허무는 국가 단위의 '버추얼 빅테크' 생태계 구축을 제안했다. 안 사장은 “국방, 에너지, 보건의료 등 안보와 직결된 분야만큼은 우리 기술로 만든 '소버린 AI' 플랫폼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재 확보를 위한 제도적 지원책으로는 반도체 전문 박사 학위 제도인 '닥터 오브 칩' 신설이 건의됐다. 아울러 연구자 보상체계 개편, 병역 특례 확대 등 패키지 지원을 통해 심화하는 글로벌 인재 유치 전쟁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정배 삼성전자 상담역은 “이번에 제안된 전략이 실행된다면 2035년 연간 1200억달러 이상의 AI 반도체 수출을 달성함과 동시에 기술 주권과 국가 안보를 탄탄히 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지는 전문가 발표에서는 한국 반도체 생태계의 현주소에 대한 진단과 해법이 제시됐다.
첫 발표자로 나선 이혁재 서울대 교수는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이 2035년 7750억 달러 규모로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교수는 “반도체는 이제 국가 AI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전략 자산”이라며 “미국이 주도하고 중국이 추격하는 형국에서, 한국은 메모리 분야를 제외하면 상용화 경험과 생태계가 여전히 초기 단계”라고 지적했다.
류수정 서울대 교수 역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메모리 분야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지만, 프로세서·시스템·소프트웨어 파운데이션 모델 등 비메모리 영역의 통합 역량은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류 교수는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국산 신경망처리장치(NPU) 의무 사용을 도입해 초기 시장을 인위적으로라도 창출해야 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박재홍 보스반도체 대표는 “미국의 칩스법(CHIPS Act), 중국의 국가 주도 전략, 일본의 라피더스 프로젝트 등 경쟁국들은 단순 R&D 지원을 넘어 인프라, 인재, 수요 창출을 아우르는 생태계 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강조했다.
윤의준 공학한림원 회장은 “AI 반도체는 대한민국 향후 50년의 기술·산업 안보를 책임질 핵심 동력”이라며 “정부, 기업, 학계가 '원팀'이 되어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