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식주 가운데 대한민국은 두 가지를 해결했다. 산업화 이후 의류와 식생활은 생존의 문제를 넘어 산업으로 성장했고, 패션 산업과 K푸드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다. 그러나 주거만큼은 여전히 사회적 갈등과 불안을 반복하고 있다.
정부는 수십년간 수많은 주택 대책을 내놓았다. 공급 확대와 수요 조정, 규제 강화와 완화, 세제 개편까지 정책 수단은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그럼에도 주택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는 정책 수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주택 정책이 무엇을 목표로 삼아왔는지에 대한 질문이 잘못 설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택 정책은 크게 두 갈래로 논의돼 왔다. 하나는 자가보유 촉진, 다른 하나는 임대주택 확대다. 이 두 축은 마치 상충하는 선택지처럼 다뤄졌지만, 사실 이는 정책의 목표가 아니라 수단에 대한 구분이다. 자가보유든 임대든, 모두 주거 안정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일 뿐 그 자체가 정책의 목적일 수는 없다.
자가보유 촉진 정책은 '내 집 마련'을 삶의 기본 조건처럼 만들어왔다. '내 집 한 채는 있어야 한다'는 인식은 자연스러운 욕망이지만, 오늘날 수도권의 현실과는 큰 괴리가 있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평균 소득으로 주택을 구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소득을 거의 소비하지 않고 수십 년을 모아야 하거나, 과도한 대출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다. 수도권에 인구 절반이 집중된 현실을 감안하면, 이를 국민 다수를 포괄하는 정책 목표로 삼기 어렵다. 그렇다고 임대주택 확대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고가 임대주택을 둘러싼 형평성 논란, 장기전세에 대한 정책적 비판은 반복돼 왔다. 무엇보다 공공임대 물량 자체에 구조적 한계가 있다. 자가보유와 임대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접근하는 한, 어느 쪽에서도 근본적 해법을 찾기 어렵다.
필자는 2006년 주택 정책의 목표를 '사는 것(투자 대상)에서 사는 곳(거주 수단)으로 전환하자'는 제안을 서울시에 했고, 그 시행 과정에도 참여한 바 있다. 이후 시장과 대통령의 교체를 거치며 이 방향성은 점차 흐려졌다. 그러나 이제 주택 정책의 질문은 다시 바뀌어야 한다. '집을 소유하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게 할 것인가'다.
주택 정책의 목표는 내 집 마련이 아니라 주거 안정이어야 하며, 그 방식이 하나일 필요는 없다. 자가보유와 공공임대를 유연하게 결합하는 '혼합형 주거' 역시 충분히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고급 주택이나 부유층의 주거 선택을 정책적으로 억지로 통제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부유층의 선택은 시장에 맡기되, 정부 정책의 중심은 중산층과 서민층이 안정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주거를 확보하는 데 두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분 공유형 주택과 같은 방식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100% 자가보유도, 전형적인 임대주택도 아니다. 개인이 일부 지분을 보유하고 공공이 나머지를 보유함으로써 주거 안정과 자산 형성, 개발이익 환수를 동시에 도모할 수 있다. 특히 재건축이나 공공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량을 활용할 경우, 시장 왜곡을 최소화하면서도 중산층과 서민층에게 실질적인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제도를 도입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주택 정책을 바라보는 사고방식의 전환이다. 자가보유냐 임대냐를 놓고 갈라진 논쟁을 반복하는 한, 공급 호수 경쟁만 이어질 뿐 주택 정책은 같은 자리를 맴돌 가능성이 크다. 주택 정책은 집값을 통제하는 정책이 아니라, 삶의 불안을 줄이는 정책이어야 한다.
임성은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전 서울기술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