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합병증 동반 '장출혈성 대장균' 숨은 기전 규명

RTX 계열 독소에 의해 적혈구가 응고 촉진 상태로 전환되고 정맥 혈전이 형성되는 과정을 나타낸 모식도. (정한영 교수)
RTX 계열 독소에 의해 적혈구가 응고 촉진 상태로 전환되고 정맥 혈전이 형성되는 과정을 나타낸 모식도. (정한영 교수)

흔한 식중독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치명적인 합병증을 동반할 수 있는 장출혈성 대장균의 또 다른 원인이 밝혀졌다.

한국연구재단은 정한영 충남대 교수와 배옥남 한양대 교수 공동연구팀이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위험한 혈전 합병증의 숨은 기전을 규명했다고 9일 밝혔다.

식중독 원인균으로 알려진 장출혈성 대장균은 일부 환자에게서 용혈성 요독증후군이나 혈전성 미세혈관병증 같은 치명적 합병증으로 진행될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공동연구팀은 RTX 계열 독소(EhxA)가 적혈구 내 칼슘 농도를 높이고 인지질(PS·세포막을 만드는 핵심 성분)을 외부로 노출해 적혈구를 혈전 촉진 상태로 전환시킨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인체 유래 적혈구를 이용한 시험관 내 실험에서 장출혈성 대장균이 분비하는 RTX 계열 독소가 막에 구멍을 형성하면 적혈구 내부로 칼슘 유입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적혈구 표면에 인지질 노출이 증가하게 된다.

인지질이 노출된 적혈구는 응고 촉진 활성이 높아져 혈액 응고 효소인 트롬빈 생성을 강화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적혈구-혈관 내피세포 부착과 적혈구 응집이 촉진된다.

이런 연쇄 반응은 혈관 내 응고 반응을 증폭시켜 최종적으로 정맥 혈전증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개략적으로 보여준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또 동물 실험 결과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 시 적혈구 변화와 정맥 혈전 형성이 증가한 반면, RTX 계열 독소 결손 균주 감염에서는 적혈구 형태 변화와 혈전 지표가 함께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번 성과를 통해 감염성 혈전 합병증을 '시가독소-혈관 손상' 중심으로만 보던 관점을 확장해,'RTX 계열 독소(EhxA)-적혈구' 축이라는 새로운 기전을 제시했다. 이는 향후 EhxA/RTX 독소 중화·차단 접근과 적혈구 변화 지표 기반의 혈전 위험도 평가·대응 전략 수립에 과학적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이번 연구 성과는 다학제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즈(Science Advances)'에 지난 7일 온라인 출판됐다.

이인희 기자 leei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