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1300년 전 소리의 경험

조완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음향진동초음파측정그룹장
조완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음향진동초음파측정그룹장

소리는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는 자극으로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더라도 인지하게 되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소리는 시각과 함께 사람의 경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소리의 특성으로 인해, 지나간 소리에 대한 경험을 보다 생생하게 공유하기 위해서, 예로부터 다양한 표현 및 기록 방법을 발전시켜 왔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고대에서부터 소리를 표현하는 다양한 의성어가 각 언어권에서 독자적으로 발전됐다. 음악의 발전과 함께 이를 공유하기 위한 음계와 악보 등 보다 전문적인 기록 방법들이 다양하게 개발됐다.

이런 기록은 녹음이 가능해지면서 완성된 것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사진의 발명 이후에도 3차원 렌더링과 같은 다양한 기술이 발전됐듯, 소리도 공간적 변화를 기록하기 위한 방법이 연구돼 왔다.

최근 문화유산에 관한 정보를 디지털 형태로 보존하고 활용하는 '디지털 유산(Digital Heritag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문화재 보존 목적은 중요한 유물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거나 복원하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한 단계 더 발전된 형태로써 '경험'과 '공유'를 통한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유산은 필수적인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디지털 유산 보존은 3차원 정보의 정확하고 정밀한 측정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범종과 같은 악기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보존해야 하는 것은 그 소리이며, 단순히 형상을 보존하는 것으로는 그 본질을 보존했다고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이런 관심 범위가 다양한 지각정보로 확대되고 있다. 소리와 관련된 콘텐츠의 비중도 늘어나고 있다.

소리의 경험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음원, 전달 경로, 청취자의 상황 등이 있다. 이 때문에 소리 유산의 보존은 단순히 한 점에서의 녹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전달되는 공간적인 변화를 반영할 수 있는 본질적인 음원을 재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에,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는 소음원의 재구성에 활용되는 음향 홀로그래피를 이용해 소리의 디지털 유산 보존 방법을 제안했다. 이를 국립경주박물관의 협조와 한국기계연구원과의 협업을 통해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소리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성덕대왕 신종 소리를 보존하는 데 적용했다.

최근 들어 한국 문화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대중문화에 그치지 않고 전통문화와 유산에 관련된 영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국립중앙박물관의 내방객 수도 세계 유수의 박물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높은 수준의 기획 전시를 제공해 선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다.

최근 개설된 상설 전시관 중 하나로 조각 공예관 내에 '감각전시실 공간_사이'가 있다. 여기에서는 앞선 연구를 통해 보존된 디지털 유산을 활용해, 성덕대왕 신종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간적, 시각적, 촉각적 감각에 대한 종합적인 경험을 제공하도록 구성됐다.

이처럼 소리를 디지털 유산 형태로 보존하는 것은 단순히 특정 위치에서 녹음된 소리를 들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마치 시각 정보가 단순한 평면 사진에서 입체 공간을 거닐어 볼 수 있도록 발전했듯이, 소리 또한 그 시대의 사람들이 느꼈던 본질적인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 이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감각(경험)을 제공해 시공간을 넘나드는 새로운 문화적 경험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조완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음향진동초음파측정그룹장 chowanho@kris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