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 과학기술 인재 정책의 빈칸

전국부 이인희 기자
전국부 이인희 기자

최근 독일 대학·연구기관을 방문해 과학기술 인재 양성 방향을 취재하는 기회가 있었다. 인상 깊었던 점은 '인재를 키운다'보다 '연구자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인식이었다.

현지 관계자들은 특정 인재를 선별해 육성하기보다 연구자가 안정적으로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제도와 생태계를 강조했다. 초기 연구자에게 독립적인 기회를 제공하고, 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스스로 방향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가 대표적이다.

연구자 생애 전환 지점을 밀착 지원하는 틀도 주목할 부분이다. 독일은 젊은 연구자로 출발해 점차 독립 연구자로 도약하는 시기인 연구자의 생애 전환 지점에 집중한다. 불안감으로 인한 과학기술계 '이탈'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예측 가능한 경력 경로를 보장하는 구조를 마련했다.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연구자의 자율성과 책임, 예측 가능한 경력 경로를 모두 보장하는 구조가 인재 양성 토대가 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하나 눈에 띈 점은 연구 클러스터다. 대학, 연구소, 기업이 가깝게 모여 있고 자유롭게 협력하면서 인재가 성장한다. 개별 연구자에 의존하기보다 집단 전체가 경쟁력을 강화해 '집단적 탁월성'을 형성한다.

이는 한국 현실과 대비된다. 우리나라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세계 상위권이지만 현장에서는 인재 부족을 호소한다. 정부가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지만 단기 사업 중심의 지원 구조와 불안정한 연구 환경이 연구자의 장기적인 경력 설계를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과학기술 인재 정책의 핵심은 단순히 인재 수를 늘리는 데 있지 않다. 연구자가 성장하고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안정적인 연구 환경, 장기적인 연구 지원, 기관 간 협력이 가능한 클러스터 구축이 함께 이뤄질 때 인재 정책은 효과를 낼 수 있다.

글로벌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는 지금, 과학기술 경쟁력의 출발점은 사람이다. 그 사람을 키우는 힘은 단기 정책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연구 생태계에서 나온다.

이인희 기자 leei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