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사태 장기화에 따른 고유가·공급망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유류세 추가 인하와 함께 전방위 대응에 나선다. 정부는 이번 상황을 사실상 '경제 전시상황'으로 규정했다. 석유제품 최고가격은 수급상황을 반영해 상향 조정했다.
정부는 26일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논의하고, 중동사태에 따른 대응방안을 발표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정부는 경제 전시 상황이라는 엄중한 인식하에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비상 대응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우선 유가 급등과 환율·금리·증시 변동성이 동시에 확대되며 실물경제 전반에 부담이 커지고 있고, 특히 취약계층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3단계에 걸친 대응을 추진한다. 1단계는 유류세 인하 등 즉시 대응, 2단계는 추경 투입, 3단계는 장기화 대비 추가 대책 마련이다.
먼저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 물가·공급망·금융시장 안정을 즉시 추진한다. 핵심은 에너지·물가 대응이다. 정부는 27일부터 휘발유 유류세 인하율을 7%에서 15%로, 경유는 10%에서 25%로 확대한다. 이번 유류세 인하로 리터(ℓ)당 유류세는 휘발유 698원, 경유 436원이 된다. 기존 가격보다 각각 65원, 87원 내려간다.
이와 함께 2차 석유제품 최고가격도 설정했다. 기존 1차 최고가격(휘발유 1724원,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에 국제가격 상승률과 국민생활 영향을 종합 고려해 휘발유는 리터당 1934원, 경유는 1923원, 등유는 1530원으로 정했다. 해당 가격은 27일부터 4월 9일까지 적용된다.
선박용 경유에도 최고가격제를 새로 적용해 1392원으로 제한한다. 화물·버스 대상 경유 유가연동보조금 지급 비율도 4월까지 50%에서 70%로 높인다. 알뜰주유소 1318개소 가격 변동 전수조사를 강화하고, 정유사 담합 혐의와 주유소 담합도 집중 조사한다.
수급 관리도 병행한다. UAE 원유 2400만배럴 등 대체 수입선 확보를 강화하고, 국제공동비축 원유 우선구매권 행사와 IEA 비축유 2246만배럴 방출 이행을 준비하기로 했다. LNG는 일본 JERA와의 스왑 체계를 활용하고 필요하면 현물 구매도 추진한다.
국내에서는 원전 가동률을 현재 70%대에서 80% 이상으로 높이고, 정비 중 원전 5기를 6월 초까지 추가 재가동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석탄발전 상한제약은 일시 해제했다. 석탄발전소 2기의 폐지 시기도 늦춘다. 공공부문 승용차 5부제 단속과 민간 자율 5부제, 시차출퇴근, 피크 시간대 전력 절약 캠페인도 병행한다.
민생물가 관리 범위도 확대된다. 중동사태 영향이 우려되는 공산품·가공식품 전반과 시설농산물, 택배 이용료, 외식서비스 등을 포함해 특별관리품목을 23개에서 43개로 확대했다.
중앙 공공요금은 상반기 동결하고, 택시·시내버스·지하철 등 지방 공공요금도 상반기 동결 원칙 아래 관리한다.
쌀은 정부양곡 10만톤을 공급하고 필요하면 최대 5만톤을 추가 공급한다. 계란은 3~4월 중 신선란 471만개를 추가 수입하고, 고등어는 칠레산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한다. 쌀·계란·고등어 등을 중심으로 150억원 규모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도 확대한다.
공급망 대응은 거버넌스와 핵심 품목 관리로 나뉜다. 정부는 경제부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관계기관 합동 공급망 위기대책본부를 25일 신설해 일일 상황회의를 열기로 했다. 공급망기금 안에는 1조5000억원 규모의 중동 피해대응 특별지원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어 대체수입, 긴급운영자금, 금리 우대, 만기 연장 등을 지원한다.
납사는 23일 위기품목으로 지정했고, 27일부터 수출통제 등 긴급수급조정조치를 검토한다.
요소·요소수는 27일부터 매점매석 금지와 불법행위 단속에 들어간다. 고시에 따라 요소수 수입·제조·판매업자와 요소 수입·판매업자는 2025년 월평균 판매량의 150%를 넘는 물량을 7일 이상 보관하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판매를 기피할 수 없다.
비철금속은 알루미늄 8000톤을 추가 구매하고 연간 공급계약도 1만톤에서 1만2000톤으로 확대한다. 아스콘, 종량제봉투, 알루미늄 건설자재 등 유가연동 제품도 실시간 모니터링 대상에 포함했다.
피해 기업과 취약계층 지원도 대폭 확대한다. 정부는 피해기업 대상 정책금융 지원 규모를 기존 20조3000억원에서 24조3000억원으로 4조원+α 늘린다.
수출입은행은 최대 2.2%포인트, 산업은행은 0.7%포인트, 기업은행은 1.3%포인트 수준의 우대금리를 적용한다. 중진공은 긴급경영안정자금 2500억원을 지원하고, 한국은행은 저신용 중소기업 대상 한시 특별지원 한도 14조원을 운용한다.
물류 지원도 강화해 기존 수출바우처 물류비 지원 한도를 최대 3000만원에서 6000만원으로 높이고, 위험할증료와 우회운송비를 별도 한도로 지원한다. 긴급 수출바우처는 신청 후 3일 안에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패스트트랙을 적용한다.
소상공인과 농어민, 화물·여객 부문 지원도 담겼다. 원금 상환이 도래한 중소기업에는 정책자금 특별만기연장을 적용한다. 소상공인에는 연료비·공과금 등에 쓸 수 있는 경영안정바우처 잔액 740억원을 신속 집행한다. 매출이 15% 이상 감소한 경우 최대 7000만원의 긴급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한다.
농어민에게는 무기질 비료 원료구입자금 2000억원과 어업인 긴급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한다. 영업용 화물차 심야 통행료와 노선버스 고속도로 통행료는 1개월 면제한다. 연안화물선 유류세 인상분 보조금 186억원과 국가보조항로·적자항로 운항결손금 249억원도 지원한다. 청년층에 대해서는 4월 중 청년뉴딜 추진방안을 별도로 발표할 계획이다.
업종·지역 대응도 포함됐다. 정부는 고용위기 심화 시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을 검토하고, 석유화학 업계의 특별연장근로는 접수 후 3일 이내 신속 인가하기로 했다. 해운업에는 기존 2조원 규모 위기대응펀드를 활용해 운영자금대출 무담보 보증과 긴급자금을 지원한다. 항공업은 외부 불가항력에 따른 경영 악화를 고려해 재무구조 개선명령 조치를 한시 유예한다.
지역 단위로는 여수·서산·포항·광양 등 기존 산업·고용위기 선제대응지역의 동향을 점검하면서 추가 지정도 검토한다.
외환·금융시장 대응도 병행한다. 국민연금 운용체계 개편, MSCI 선진국지수 편입 대응 조직 구성, 긴급 바이백 5조원 등 시장 안정 조치를 추진한다.
아울러 정부 25조원 수준의 추경을 추진한다. 고유가 부담 완화, 민생 안정, 공급망 대응, 지역경제 회복 등에 집중 투입된다. 정부는 향후 상황 악화에 대비한 추가 대응을 예고하며 국민 협조를 요청했다.
구 부 총리는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경제 안정 추가 대책을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필요시 즉각 시행하겠다”며 “전 부처가 힘을 모아 물가, 공급망, 금융시장 등 전 분야를 점검할 계획이다. 에너지 절약 등 위기 극복 노력에 적극 동참해 달라”고 말했다.
손지혜 기자 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