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10일 0시부터 2주간 적용되는 3차 석유 최고가격을 동결했다. 미국과 이란이 2주간 휴전에 합의하면서 국제 유가가 급락세를 보인 데 따른 결정이다. 다만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공격이 재개되고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봉쇄하면서 '시한부 휴전'은 첫날부터 파열음을 냈다.
산업통상부는 3차 최고가격제 상한선을 2차와 동일한 수준(휘발유 1934원, 경유 1923원, 등유 1530원)으로 유지한다고 9일 밝혔다.
최근 2주간 휘발유(8.8%)와 경유(8.6%) 국내 가격이 꾸준히 상승했지만, 전날 휴전 발표로 국제 유가가 10% 이상 떨어진 점을 반영했다. 특히 서민 경제와 물류의 핵심인 경유는 화물차 운전자, 택배 기사, 농어민 등 생계형 수요가 집중된 만큼 민생 보호를 위해 과감히 동결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전날 극적으로 이뤄진 미국과 이란의 시한부 휴전은 첫날부터 붕괴 조짐을 보였다. 가장 큰 뇌관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이다. 이스라엘 측은 이란 본토 타격은 멈추지만 헤즈볼라 소탕전은 휴전 대상이 아니라며 대규모 공습을 강행했다. 이에 이란은 “이스라엘이 명백히 휴전 합의를 위반했다”고 반발하며 합의 철회 가능성을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이 휴전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즉각적인 군사 행동에 나서겠다며 맞불을 놨다.
세계 경제의 대동맥으로 불리는 호르무즈 해협 상황은 다시 악화됐다. 휴전 발표 직후 상선 통항이 재개되는 듯했으나, 이스라엘의 공습이 이어지자 이란 해군은 “허가 없는 선박은 격침하겠다”며 빗장을 걸어 잠갔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는 우리 국적선 4척을 포함해 총 7척의 유조선이 발이 묶인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이란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인근 걸프 지역 석유 시설을 노린 드론 공격도 감행했다. 사우디의 횡단 송유관도 타격을 입었다.
정부는 중동 정세의 극심한 변동성에도 불구, 국내 공급망은 아직 안정적인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반도체 소재인 헬륨, 자동차 배터리 원료인 황산니켈, 조선용 소재 등 주요 품목은 현재까지 대체 수입선을 통해 차질 없이 공급되고 있다. 민생과 직결되는 수액제 포장재, 분유 및 라면용 플라스틱 포장재 등도 평시 재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공급망지원센터를 통해 업계 애로를 상시 파악하는 한편,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경우 원료를 우선 공급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재원 마련과 수급 방어책도 병행된다. 최고가격제 유지를 위해 편성된 4조2000억원 규모 목적 예비비를 활용해 정유사의 원가 정산 등을 뒷받침할 계획이다. 또 비축유 스와프(SWAP) 물량을 지속적으로 방출해 국내 수급 안정을 꾀하는 한편, 6월과 7월 인도분 원유 스팟(단기) 물량을 선제적으로 확보해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
양기욱 산업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최고가격제는 급격한 가격 인상을 방지해 국민 부담을 완화하는 것이 기본 취지”라며 “하루 만에 국제 유가가 폭락하는 등 변동성이 극심한 상황인 만큼, 안정적인 하향 흐름이 형성될 때까지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며 판단을 내려갈 것”이라고 밝혔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