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플랫폼톡]기후테크, 데이터로 증명하는 시대가 왔다

이용균 알스퀘어 대표 겸 벤처기업협회 스타트업위원회장
이용균 알스퀘어 대표 겸 벤처기업협회 스타트업위원회장

기후테크가 '미래 산업'이라는 수식어를 떼어낼 때가 됐다.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전자신문의 '기후테크 이니셔티브 토론회'에 참석하며 그 확신은 깊어졌다. 정부와 국회의원, 공기업, 연구기관, 스타트업이 한자리에 모여 'K기후테크 3대 강국 도약 전략'을 논했다. 규제와 당위의 언어가 아니라 시장과 기술의 언어로 기후를 말하는 자리였다. 기후테크는 이제 환경부 소관 의제가 아니라 산업정책의 핵심으로 올라섰다.

이날 회의실 안에는 위기감과 낙관이 공존했다. 중국은 지난 6개월간 재생에너지 설비 256GW를 새로 구축했고, GDP의 10%가 녹색경제에서 나온다. 향후 5년간 에너지 전환 투자 규모만 2200조원이다. 글로벌 기후테크 유니콘 54개 중 미국이 25개, 중국이 19개를 차지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단 한 개도 없다. 냉혹한 숫자들이 자성의 출발점이 됐고, 동시에 '지금 움직이면 아직 늦지 않았다'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프롭테크 기업을 이끌며 한 가지를 몸으로 익혔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산업이 기후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구 면적의 2%에 불과한 도시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70%를 만들어내고, 그 절반은 건물에서 나온다. 부동산은 기후 위기의 방관자가 아니라 핵심 당사자다.

그 인식 위에서 우리가 택한 방법은 선언이 아니라 데이터였다. 알스퀘어는 지난 한 해 인테리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폐기물 1200톤을 소각이나 매립 없이 전량 자원화했다. 누적 처리 953건, 감축한 탄소 배출량은 1090.2tCO₂다. 소나무 17만 그루가 1년간 흡수하는 탄소량에 해당하고, 여의도 공원을 네 번 덮을 수 있는 울창한 숲을 조성한 것과 맞먹는 수치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 덕분이었다.

인테리어 자회사와 디지털 폐기물 관리 플랫폼이 협력해 폐기물 배출부터 최종 처리까지 전 과정을 데이터로 기록했다. 현장별 처리 이력과 물량이 실시간으로 집계됐고, 그동안 업계의 고질적 문제였던 불투명한 처리 경로가 완전히 가시화됐다. 폐합성수지는 고형연료로, 폐목재는 바이오연료로, 가벽 자재는 순환골재로 전환됐다. 처리 단가는 5% 이상 낮아졌다. 환경적 성과와 경제적 효율이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을 수치로 입증한 사례다.

투자 시장도 방향을 바꾸고 있다. 우리가 분석한 결과,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친환경 건축 인증 건물은 연평균 30% 증가했다. G-SEED와 LEED를 동시에 취득한 복수 인증 빌딩은 같은 기간 26건에서 71건으로 173% 늘었다. 강남과 판교에서 친환경 인증 건물이 집중적으로 증가하는 배경은 단순하다. 글로벌 연기금과 외국계 기업들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충족 여부를 투자의 전제 조건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친환경은 더 이상 가산점이 아니라 시장 진입의 기본 요건이다. 분산된 친환경 인증 정보를 통합해 컨설팅 서비스로 제공하기 시작한 것도 이 흐름 위에 있다.

토론회에서 여러 전문가가 공통으로 지목한 난제가 있었다. '데스밸리'다. 기술은 검증됐지만 초기 시장 진입과 본격 성장 사이의 골짜기가 깊다는 것이다. 실증 사업은 넘쳐나지만 실제 상용화로 이어지는 비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김성우 김앤장 환경에너지연구소장은 '이미 경제성을 확보했거나 곧 확보할 기술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했고, 이상협 국가녹색기술연구소장은 '한국 특유의 제조 경쟁력과 속도를 기후 전환에 결합하는 것이 돌파구'라고 강조했다. 공공조달 연계, 장기 저리 융자, 녹색채권 활용 등 정책 수단도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방향은 선명하다. 문제는 실행 속도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세 가지를 요청했다. 기술 검증 이후 시장 진입까지 평균 3~5년이 걸리는 구간을 메울 벤처 특화 브릿지 펀드, 국내 수요 기반을 만들기 위한 공공조달 혁신제품 우선 구매 비율 상향, 그리고 중복 투자를 방지하고 전략적 집중을 가능하게 할 특허 빅데이터 기반 기술 로드맵 공유 확대다. 신선한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러나 정책 의지와 시장 수요가 이처럼 맞물린 시기에 실행되지 않으면, 또 다시 '방향은 옳았지만 결과가 없는' 의제로 소비될 것이다.

기후테크는 선언의 단계를 지났다. 데이터로 감축을 증명하고,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해야 한다. 폐기물 1200톤을 전량 자원화하고 친환경 인증 정보를 시장에 공급하는 것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기후테크가 부동산이라는 일상적 산업 현장에서도 작동한다는 것을 숫자로 보여주는 일이다. K기후테크가 반도체와 배터리에 이은 다음 성장 동력이 되려면 지금 이 골든타임을 흘려보내선 안 된다. 정책과 자본과 대기업이 벤처와 함께 달릴 때, 그 가능성은 비로소 현실이 된다.

이용균 알스퀘어 대표·벤처기업협회 스타트업위원회장 ceo@rsquar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