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사 학위 과정 중 어머니를 암으로 떠나보내고, 이어 아버지마저 암 수술 이후 합병증과 반복된 코로나 감염으로 오랜 병상 생활을 이어갔다. 연구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가족의 아픔이 겹치면서 박사 학위를 마친 뒤에도 과연 연구자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을지 고민했던 시간이 있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라는 마음과 함께 '연구를 그만두고 생계를 위한 일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깊어졌다.
그 때 병상에 계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나 때문에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한다면 그것이 더 마음 아픈 일이다. 돈은 나중에도 벌 수 있으니, 꿈을 쉽게 내려놓지 말고 도전해 보라.”
그 말씀은 삶의 방향을 다시 잡아준 계기가 됐다. 병상에 계신 아버지 곁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에 많은 연구자가 선택하듯 해외로 나가는 길 대신, 국내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시작하기로 했다. 대신 국내 연구 인프라를 기반으로 해외 유수 연구기관에 뒤지지 않는 연구 성과를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다시 연구를 이어갔다.
마침 그 무렵 젊은 연구자를 위한 세종과학펠로십이 새롭게 시작했다. 박사후연구원 1년 차 용기를 내 도전했고, 2021년 첫 선정 연구자로 지원받을 수 있었다. 심적·물질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에 정부 개인기초연구 지원사업은 단순한 연구비 지원 이상의 의미였다. 매 순간 어깨를 짓누르던 부담과 죄책감 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걷던 자신에게 다시 하늘을 바라보며 연구할 수 있는 힘을 준 계기가 됐다.
그 이후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고, 2024년 오랜 목표였던 대학 교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임용 소식을 가장 먼저 아버지께 전했을 때 병상에서 손을 꼭 잡아주시며 함께 기뻐해 주시던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임용된 그해 봄 아버지께서는 안심하신 듯 곁을 떠나셨다.
세종과학펠로십을 비롯한 정부 개인기초연구 지원사업은 연구자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해준 성장 사다리였다. 특히 비전임 연구자 시기부터 전임교원이 된 이후까지 연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줬다. 이는 연구자가 장기적 관점에서 도전적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됐다.
이를 기반으로 2026년 올해 신진연구 과제 선정으로 이어졌다. 리튬금속전지 시스템을 활용해 차세대 고에너지 양극소재 설계 원리를 확립하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연구는 전기차, 에너지 저장, 항공 산업 등 미래 산업의 핵심 기술로 이어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개인기초연구는 단기간 성과가 드러나기 어렵지만, 한 연구자 삶과 국가 미래 기술을 동시에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오늘의 한 젊은 연구자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경험이 또 다른 연구자에게도 이어지길 바란다.
이제 'K'라는 접두어가 문화와 산업을 넘어 한국의 경쟁력을 상징하는 말로 자리 잡은 것처럼, 우리나라 기초연구가 세계 연구자에게 영감을 줘 새로운 패러다임의 'KI초연구'(K-Inspired transcendental research·한국에서 영감받은 초월적 연구)로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정부의 꾸준한 지원과 연구자의 책임 있는 도전이 함께 이어질 때 대한민국 기초연구는 세계의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다.
이원태 경북대 화학교육과 교수 ciel@k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