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깨닫는다는 것은 결국 배운 만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설명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화낼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아직 배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모든 사람을 끝까지 설득하려 애쓰기보다, 그냥 지나쳐야 할 사람을 알아보는 것 또한 삶의 질서를 배우는 일에 가깝다.
돌이켜보면 우리 역시 오랜 시간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필요할 때만 불리고, 다 쓰고 나면 밀려나는 경험을 해왔다. 그런 일을 겪을수록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접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삶이 결국 사람을 배워가는 과정이라면, 상처 역시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에게 실망하더라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일만큼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앞으로 인공지능(AI) 동반자가 늘어나는 시대는 분명 올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도구가 정교해져도 갈등은 남고, 기술이 발전해도 고립은 끝나지 않는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언제나 사람의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는 이미 환경이 생존을 위협하는 시대를 지나, 인간이 서로의 생존을 위협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산업자본주의가 만든 “시간은 돈”이라는 공식도 점점 힘을 잃고 있다. 결국 사회를 흔드는 것은 도구의 부족이 아니라 관계의 실패이고, 시스템의 미비만이 아니라 책임의 회피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질서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제도나 통제 이전에,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각자가 스스로 감당하기로 한 보이지 않는 약속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람 사는 질서는 계약서보다 먼저 태도에서 시작된다. 책임, 배려, 신뢰, 그리고 서로를 쉽게 소비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합의가 그 바탕이다.
문제는 이런 질서가 자본주의 시장 원리만으로는 충분히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교환 가능한 재화와 서비스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사회문제 해결은 단지 거래로 설명되지 않는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 비영리 조직, 활동가들의 노력은 상품처럼 가격을 붙이기 어렵다. 거기에는 신뢰가 필요하고, 공감이 필요하며, 오래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회는 바로 이런 보이지 않는 헌신 위에서 겨우 유지된다.
그래서 우리는 더 쉽게 사회문제 해결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더 편하게 지지할 수 있어야 하고, 더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선한 의지가 특별한 결심이 아니라 일상의 행동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들의 이야기가 단지 감동적인 사연으로 소비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실제 후원과 참여로 이어지고, 이렇게 이어진 기록들이 흩어지지 않고 축적되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스토리 → 후원/참여 전환 → 데이터 축적의 흐름이다. 이야기가 사람을 움직이고, 후원과 참여가 관계를 만들며, 데이터가 그 관계를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비영리 조직과 활동가들의 데이터 구조를 표준화하는 온드미디어 기반 SaaS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누군가의 선의가 사회 변화 가능성을 읽을 수 있는 집단적 데이터로 전환되고, 이 데이터가 더 나은 연결과 설계를 가능하게 만든다. 결국 이것은 사회문제 해결의 지도가 되어 선의를 사라지지 않게 만드는 사회적 인프라로 성장하게 된다.
우리는 사람에게 상처받으며 사람을 배운다. 중요한 것은 그 경험 끝에서 냉소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질서를 고민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기술은 사회를 보조할 수 있지만 대신 살아주지는 못한다. 결국 사람 사는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더 똑똑한 시스템만이 아니라, 더 쉽게 공감하고 더 자연스럽게 후원하며 더 오래 관계를 축적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다. 그리고 그 구조는 결국 사람을 이해하려는 태도, 함께 살아가기 위한 보이지 않는 약속 위에서만 가능하다.
함성룡 (재)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상임이사(C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