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흑두루미 8000마리 돌아왔다”…전봇대 뽑고 농지 되돌린 '순천만의 시간'

전남 순천만 습지에서 흑두루미 등 철새들이 먹이감을 찾고 있다. 사진 출처 : 기후에너지환경부
전남 순천만 습지에서 흑두루미 등 철새들이 먹이감을 찾고 있다. 사진 출처 : 기후에너지환경부

전남 순천만 습지. 갈대밭 사이로 펼쳐진 보행로를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갯벌 위 무수히 많은 구멍이었다. 이들은 갯벌 구멍 사이로 수시로 오가는 작은 칡게와, 한쪽 집게발이 유난히 큰 수컷 농게의 서식지다.

순천만 생태체험선을 타고 30분간 6㎞를 왕복하며 바라본 갈대밭에는 백로와 기러기, 도요류 등 다양한 철새들이 눈에 띄었다. 물이 빠진 갯벌 위를 따라 부리를 바쁘게 움직이며 먹이를 찾고, 인기척이 느껴지면 일제히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앉는 장면이 반복됐다. 하늘과 갯벌, 물길이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졌다.

작은 칡게들이 전남 순천만 습지 갈대밭 갯벌 구멍 사이로 수시로 오가고 있다.
작은 칡게들이 전남 순천만 습지 갈대밭 갯벌 구멍 사이로 수시로 오가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주관 녹색대전환(GX) 국제행사 기간 여수를 방문한 기자단은 지난 21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순천만에 들렸다.

이날 순천만에서 흑두루미는 선명하게 포착되지는 않았다. 다만 현장에서는 한 쌍이 인근에 머물고 있다는 생태해설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실제로 순천만은 국내 최대 흑두루미 월동지로, 매년 수천 마리가 이곳을 찾는다.

이곳이 철새를 끌어들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순천만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 생태계가 원형에 가깝게 보전된 대표적 연안습지다. 갯벌과 염습지, 농경지가 연결된 구조 속에서 먹이사슬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출입기자단은 지난 21일 순천만 생태체험선을 타고 30분간 6㎞를 왕복하며 갈대밭 생태현장을 취재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출입기자단은 지난 21일 순천만 생태체험선을 타고 30분간 6㎞를 왕복하며 갈대밭 생태현장을 취재했다.

현장을 걷다 보면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비워낸 공간'이라는 점이 더 크게 다가온다. 동천하구 일대에서는 과거 전신주를 철거하고 농경지를 습지로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인간의 이용 공간을 줄이고 철새의 서식지를 넓힌 결과다.

갯벌 가장자리에서는 사람이 아닌 새가 주인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거나, 물길을 따라 이동하며 먹이를 찾는 모습이 이어졌다. 단순한 관찰 대상이 아니라, 이 공간의 '주체'에 가까운 존재였다.

이 같은 풍경은 자연 발생적 결과가 아니다. 순천만은 먹이터 조성, 습지 복원, 농업 방식 전환 등을 통해 철새가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의도적으로 구축해왔다. 전신주 수백 개를 제거하고 농경지를 되돌리는 등 적극적인 관리가 이어졌다.

그 결과, 철새 개체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순천만을 찾는 흑두루미는 2000년대 초 100마리 수준에서 최근 8000마리를 넘어섰다. 일본 서식지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이후 일부 개체가 순천만으로 이동하며 '대체 서식지' 역할까지 하고 있다.

전남 순천만 습지. 사진 출처 : 기후에너지환경부
전남 순천만 습지. 사진 출처 : 기후에너지환경부

순천만을 떠나려는 무렵, 갈대숲 위로 새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낮게 날아오른 뒤 방향을 바꾸고, 다시 갯벌로 내려앉는 장면이 반복됐다. 하루의 리듬에 맞춰 생태계가 작동하는 모습이었다.

순천만은 특정 종 하나로 설명되는 공간이 아니다. 수많은 철새가 만들어내는 움직임, 그리고 인간이 한 발 물러나며 완성된 구조가 함께 만든 결과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