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쥐에서 유래한 일부 알파코로나바이러스가 별도의 변이 없이도 인간 세포에 침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간 코로나19를 비롯한 베타코로나바이러스 연구에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알파코로나바이러스의 인수공통감염 가능성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영국 피어브라이트 연구소와 케임브리지대학교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은 22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바이러스는 감염 초기 단계에서 숙주 세포 표면의 특정 단백질, 즉 '수용체'와 결합해야 한다. 예컨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체의 ACE2 단백질을 통해 세포에 침투한다. 대부분의 박쥐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 수용체와 결합하지 못하지만, 돌연변이를 거쳐 결합 능력을 획득할 경우 대규모 유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팀은 알파코로나바이러스 40종을 분석한 결과, 케냐 하트코박쥐에서 발견된 특정 바이러스가 인간 세포의 CEACAM6 단백질을 새로운 수용체로 활용해 침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이 바이러스는 추가적인 변이 과정 없이도 인간 세포에 직접 침투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실제 감염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팀이 해당 박쥐 서식지 인근에 거주하는 케냐 주민 368명의 혈청을 분석한 결과, 인체 감염이 발생했다는 면역학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가 잠재적 팬데믹 위험을 사전에 포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한다. 한국과학기술원 의과학대학원 신의철 교수는 “동물 유래 코로나바이러스의 인체 감염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연구로, 향후 신종 감염병 대비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바이러스가 실제로 인간에게 확산되기 이전 단계에서 감염 경로를 규명함으로써, 미래 팬데믹 대응 전략 수립에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