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란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가상 세계에서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선전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장난감 레고를 활용한 애니메이션 스타일 영상도 그중 하나다. 한 영상에는 백악관 집무실에 앉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초조하게 휴대전화를 보고 있고, 화면이 전환되며 전투기가 합동 기동을 펼치는 모습이 묘사됐다.
트럼프 행정부를 겨냥한 레고 영상은 대부분 익스플로시브 미디어라는 소규모 미디어 회사가 제작한 것이다. 해당 단체는 이란 정권과의 관계를 전면 부인했지만, 일부 관계자가 BBC와 인터뷰에서 “이란 정권이 고객”이라고 밝힌 바 있다.
22일(현지시간) ABC 방송에 따르면 과거 미국 정보국에서 근무했던 선전 연구 전문가인 낸시 스노우 교수는 “영상 제작자들은 온라인에 게시된 내용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콘텐츠로 바꾸고 있다”며 “이야기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다면 분위기와 감정까지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틱톡과 엑스(X·옛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휩쓸고 있는 이 영상들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미국과 이란의 전쟁을 비판하고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하는 내용을 담은 고도의 정치적 선전물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밈 전쟁' 또는 '밈 밀매'라고 규정하며 미국 내에서는 이를 비꼬아 '레고-간다('레고'와 '프로파간다'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과거에는 선전물 제작에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렸으나, 최근에는 AI를 활용하면서 매일 발생하는 뉴스 사건에 즉각 반응해 하루에도 수많은 밈이 쏟아져 나온다. 이처럼 AI로 생성하는 선전용 저품질 콘텐츠는 '슬로파간다(Slopaganda)'라고 불린다.
전문가들은 영상 속 언어가 페르시아어가 아닌 영어이고, 서구권에 친숙한 레고 스타일을 차용한 점으로 보아 타깃이 이란 국민이 아닌 미국과 서구 시민임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특히 이 영상들을 만드는 데 사용된 AI 도구와 데이터 센터 대다수가 미국 기술이라는 점에서 이란이 적의 무기를 역이용해 적의 심장부를 공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역시 이 같은 AI 프로파간다를 적극 이어가고 있으나, 되레 싸늘한 반응을 얻고 있다.
미군 공식 계정들은 스포츠 경기 영상이나 비디오 게임 화면을 실제 교전 영상과 교차 편집해 게시한 바 있으나, 전쟁의 참혹함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최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메시아'에 빗댄 AI 이미지를 게시했다가 '신성 모독'이라는 논란에 휩싸여 게시글을 내리기도 했다.
맥쿼리 대학교 철학 부교수이자 컴퓨터 과학 전문가인 마크 알파노 교수는 “미국 측 선전물은 서사적 일관성이 부족하다”며 “누구에게 동정하고, 누구를 선한 사람으로, 누구를 악한 사람으로 묘사하는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