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AI가 부른 설비 잠식…소자 시장도 'K자형 양극화'

[해설]AI가 부른 설비 잠식…소자 시장도 'K자형 양극화'

2026년 상반기 전자업계 수동소자 쇼티지(공급부족)는 생산 라인이 고부가 제품으로 쏠리며 발생하는 '구조적 병목' 양상을 띠고 있다.

주요 제조사들이 AI 서버와 전기차(EV)에 필수적인 고용량·고전압(High-CV) 제품에 생산 역량을 집중하면서 일반 IT용 소자 수급까지 연쇄 타격을 받는 'K자형 양극화'가 심화됐다. 전방 산업별 조달 난이도 차이가 극명하게 벌어지는 모습이다.

이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 확대를 위해 일반 D램 라인을 할당하면서 전체 메모리 공급망이 경색되는 현상과 유사하다는 평가다. 다만 D램 시장에서는 메모리 제조사 3사(삼성·SK·마이크론) 외엔 대안이 없는 반면, MLCC 시장에서는 1군 무라타·삼성전기 공백을 야게오(대만)나 풍화고과(중국)이 범용 제품(0402/0603) 시장을 흡수하며 지배력을 확대하는 추세다.

가장 수급이 긴박한 분야는 AI 서버다. 일반 서버 대비 10~20배 이상의 고용량 MLCC가 투입되는 AI 서버는 GPU와 HBM의 전원 관리 및 노이즈 제거를 위해 고사양 소자를 대량으로 소모한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선제적인 장기 계약(LTA)으로 물량을 선점하고 있지만, 구매력이 낮은 중소 세트 업체들은 공급 순번에서 밀려나며 조달 비용 상승 압박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주요 소자, 부품별 리드타임 및 수급 상황〉
〈주요 소자, 부품별 리드타임 및 수급 상황〉

자동차 산업도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과 배터리관리시스템(BMS)용 전장 MLCC 공급 압박이 지속되고 있다. 주요 업체 전장 제품 리드타임이 20주 안팎을 유지하면서 완성차 업체들의 조달 비용이 상승 중이다. 내연기관차 대비 MLCC가 3~4배 들어가는 보급형 전기차는 원자재 및 부품가 상승을 구실로 가격 인상을 시도할 수 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시장 재편을 부품사 실적 호재로 평가한다. 저부가 제품 비중 축소와 AI·전장 고부가 비중 확대를 통해 영업이익률이 과거 10%대에서 20%대로 개선될 것으로 전망한다. 무라타를 필두로 한 가격 인상 움직임도 고사양 수요 호조에 힘입어 안착하는 분위기다. 무라타, 삼성전기, 태양유전 등은 4월 들어 고사양 제품을 중심으로 5~20% 수준의 판가 인상을 단행했다.

글로벌 제조사들의 신규 라인 증설에는 통상 18~24개월이 소요된다. 이에 따라 고부가 제품 중심의 타이트한 수급 상황은 2026년 연말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중견·중소 세트 업체들은 공급선 다변화(2nd Source)와 원자재 리스크 관리를 서두르고 있다.

이와 관련 가전업계 관계자는 “특히 최근 소비자 가전업계에서도 스마트 가전 성능을 위해 고사양 고압 MLCC를 사용하는 추세”라며 “범용 MLCC는 창고에 재고가 쌓여 있는데, 고사양 규격 MLCC 몇개를 못 구해 제품 생산에 차질을 겪을 리스크를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형두 기자 dud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