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엔지니어링 시뮬레이션 선도 기업인 앤시스(Ansys)를 인수한 시높시스(Synopsys)는 지난 3월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엔비디아 GTC 2026에서 아날로그 디바이스(Analog Devices Inc., ADI) 및 엔비디아(NVIDIA)와 협력해 데이터센터 케이블 관리용 산업 로봇의 학습 및 성능 검증을 위한 피지컬 AI 시뮬레이션 기술을 공개했다.
AI 수요 폭증으로 전 세계 데이터센터 건설이 급격히 늘어나는 가운데, 수만 개의 케이블을 관리하는 로봇이 차세대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 데이터가 새로운 석유라면, 케이블은 그 파이프라인이다. AI 기반 서비스 수요 폭증은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의 급속한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는 엄청난 규모의 연산·저장·네트워킹 수요를 처리하는 수천 대의 서버를 갖춘 시설로, 수만 평방피트에 달하는 공간과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연결 케이블로 구성된다.
이 규모에서는 작은 비효율도 금세 큰 손실로 이어진다. 바로 여기서 산업용 로봇이 등장한다. 그러나 케이블은 다루기로 악명 높은 대상이다. 중요한 통화 직전에 유선 이어폰을 풀어야 했던 경험이 있다면 그 고충을 알 것이다. RJ45 이더넷 케이블을 꽂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동작도, 로봇을 학습시키는 과정에서는 믿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작업이 된다.
앤시스의 애플리케이션 엔지니어링 디렉터 키쇼르 라마스와미(Kishor Ramaswamy)는 이렇게 말한다. “로봇에게 당연한 것이란 없습니다. 어떤 포트에 꽂아야 하는가? 커넥터를 인터페이스에 어떻게 맞춰야 하는가? 케이블을 얼마나 단단히 쥐고, 커넥터를 얼마나 세게 눌러야 연결은 되면서 부러지지 않는가? 케이블이 무언가에 걸려 있다면?”
이 같은 연결 작업을 열과 고전압이 공존하는 환경 속 수천 대의 서버 규모로 확장해보면, 케이블 문제를 해결하려는 로봇 기업들이 직면한 도전의 크기를 실감할 수 있다. 데이터센터의 폭발적 증가는 시뮬레이션만이 제공할 수 있는 빠른 해법을 요구한다.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현실 세계에서 로봇을 학습시키거나 여러 차례의 물리적 시제품 제작 단계를 거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로봇은 성능 평가를 위한 표준 벤치마크를 기반으로 합성 데이터를 통해 학습되어야 한다. 이러한 물리적·가상적 벤치마크는 데이터센터 건설 붐을 활용할 적기에 고품질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아날로그 디바이스(Analog Devices Inc., ADI)가 이 도전에 나섰다. ADI는 물리 세계와 디지털 세계를 잇는 글로벌 반도체 선도 기업으로, 산업용 로봇 분야에서 모션 컨트롤, 기능적 안전, 첨단 센싱, 비행 시간(Time of Flight, ToF) 센서, 머신러닝, 고속 이더넷 통신, 시스템 수준 설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ADI는 앤시스 메카니컬(Ansys Mechanical) 유한요소해석(Finite Element Analysis, FEA)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케이블 관리를 위한 다양한 로봇 정책의 학습 및 검증에 쓰이는 엔비디아 아이작 심(NVIDIA Isaac Sim) 환경에서 케이블 및 커넥터 모델의 물리적 정밀도를 높이고 있다. 아이작 심은 물리 기반 가상 환경에서 AI 구동 로보틱스 솔루션을 시뮬레이션하고 테스트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오픈소스 로봇 시뮬레이션 프레임워크다.
앤시스 메카니컬 소프트웨어는 고정밀 물리 해석을 제공해 '시뮬레이션-현실 간 격차(Sim2real gap)'를 줄이는 데 활용된다. 연결 동작에 필요한 각도 제한, 파단력, 탄성 등 아이작 심의 물리 엔진 및 모델 파라미터를 산출하며, 이는 오픈USD(OpenUSD) 에셋으로 패키징되어 ADI의 아이작 심 환경에 통합된다.
메카니컬 구조 시뮬레이션 외에도, Ansys AVxcelerate Sensors는 ToF(Time-of-Flight) 센서를 활용하는 3D 인식 시스템의 정확도와 성능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적용될 수 있다.
ADI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바탕으로 ToF 센서, 촉각 센서(정밀한 힘·토크 감지 및 측정 제공) 등 자사의 로보틱스 솔루션을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로보틱스 산업 전반의 발전을 위해 습득한 지식을 일련의 벤치마크로 공개·공유할 예정이다.
ADI의 엣지 AI 부문 부사장 폴 골딩(Paul Golding)은 “시높시스의 다중물리 시뮬레이션은 현실적인 로봇 테스트 벤치를 구현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엔비디아와 함께 이 정밀도를 활용해 시뮬레이션-현실 간 전환을 실제 산업용 정밀 작업에 실용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벤치마크와 디지털 트윈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ADI는 이러한 벤치마크의 고정밀 디지털 트윈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고객들은 자체 로봇 플랫폼 또는 ADI의 레퍼런스 디자인과 ADI 기술 기반 고정밀 디지털 트윈을 활용해 엔비디아 아이작 랩(NVIDIA Isaac Lab)에서 즉시 AI 솔루션 개발을 시작할 수 있다. 아이작 랩은 환경 설정부터 정책 학습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며, 모방 학습(Imitation Learning)과 강화 학습(RL)을 모두 지원하는 오픈소스 통합 로봇 학습 프레임워크다.
ADI의 플랫폼은 가와사키 중공업(Kawasaki Heavy Industries)을 포함한 초기 도입 기업들이 예측 정확도를 높여 로봇 성능을 시뮬레이션하고 합성 데이터를 생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반복적인 물리 테스트 사이클을 줄이고 혁신을 가속한다.
한편, 시높시스는 지난 3월 16일부터 19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린 엔비디아 GTC 2026에서 자사 부스를 통해 ADI와의 협업 성과를 시연한 바 있다. 시연에는 힘·비전·접촉 감지 기능을 갖춘 양팔 로봇 암 설정과 이에 대응하는 디지털 트윈이 포함됐다.
임민지 기자 minzi56@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