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박건영의 셀프 입시]⑨정치외교학으로 가는 생기부

박건영 이투스에듀 센터장.(사진=이투스에듀)
박건영 이투스에듀 센터장.(사진=이투스에듀)

내가 만난 정치외교과 합격 학생들의 생기부는 한결같이 '시사 감수성'과 '논리의 두께'를 함께 갖추고 있었다. 시사 이슈에 흥분만 하고 끝내는 학생, 반대로 책만 파고드는 학생, 둘 다 정외과에 가지 못했다. 합격한 학생은 신문을 읽고, 그 기사를 이론으로 한 번 더 갈아낸 학생이었다. 사회 현상을 보는 눈, 세계를 읽는 틀, 갈등을 다루는 태도. 이 세 가지가 3년간의 생기부에 어떻게 새겨지는지를, 합격한 선배들의 사례로 풀어보고자 한다.

1. 정외라는 학과를 한 줄로 말하면

정치외교학은 '권력'과 '관계'를 다루는 학문이다. 한쪽에는 한 사회 안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결정하는가의 문제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협상과 갈등이 놓여 있다. 실제로 정외에 합격한 학생들은 사회·문화, 정치와 법, 세계지리, 동아시아사 같은 사회 교과를 단순 이수한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왜 이런 결정이 내려지는가'를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이를테면 한국현대사회 시간에 사드 배치를 두고 군사·경제·외교의 연쇄효과를 짚어낸 발표 같은 것들이다. 정외 합격생의 생기부는 결국 '뉴스의 표면을 자신에 좋아혀 습득한 이론으로 깎아낸 기록'이다.

2. 고1 안테나 세우기, 신문과 친해지는 시기

고1 시기는 정외 지망생에게 '안테나를 세우는 단계'다. 이 시기에 무리하게 국제정치 이론서를 펴들 필요는 없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매일의 시사 이슈를 자기 언어로 정리하는 습관이다. 합격한 한 학생은 1학년 때 '아침에 일찍 등교해 신문을 읽는' 습관을 3년 내내 이어갔다. 외교 이슈 스크랩을 꾸준히 하면서 동북아시아 정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짧게 적어두었다. 거창한 활동이 아니다. 그러나 3년이 쌓이자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시사 감각의 두께'가 생겼다.

자율활동에서는 학급 임원이나 학생자치회 활동이 정외와 잘 어울린다. 갈등을 조정하고, 규칙을 만들고, 의견을 모으는 모든 과정이 곧 정치학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동아리는 시사토론이나 모의유엔, 영자신문반이 가장 자연스럽다.

[에듀플러스][박건영의 셀프 입시]⑨정치외교학으로 가는 생기부

3. 고2 시사이론가 되기, 이론을 입히는 시기

고2가 되면 같은 시사라도 다르게 읽혀야 한다. 1학년이 '사실의 수집'이라면, 2학년은 '이론의 적용'이다.

서울대 정외 합격생의 한국현대사회 세특에는 위안부 문제를 퍼트남의 양면 게임이론으로 풀어낸 탐구 보고서가 등장한다. 한국과 일본의 대응을 비교하고, 정부 내부의 갈등과 일본 정부의 양면성까지 끄집어냈다. 담당 교사가 '논문의 내용이 우수하여 위안부 문제 전문가에게 보내고 학생을 연결해 주었다'고 적을 정도였다. 시사 이슈 하나가 '국제정치이론 + 외교사 + 비판적 분석'으로 확장된 사례다.

연세대 정외 합격생의 경우, 자율 동아리로 직접 정치외교 동아리를 만들고 NIE 신문 만들기 대회에서 미국·중국·프랑스·일본·러시아·독일·사우디 등의 정치제도를 비교한 신문을 제작했다. 각 나라의 역사적 경험과 현 실정을 분석하고, 연표·일러스트·지도까지 직접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정외에서 요구하는 '비교 정치적 사고'의 출발점이다.

4. 고3 정체성 결정하기, 형용사형 정체성이 확실해지는 시기

“외교관이 되고 싶습니다”는 명사형 희망이다. 그러나 정외 합격생의 3학년 생기부는 명사형이 아니라 형용사형으로 닫힌다. '국제기구의 인권규범 형성 과정에 관심 있는 학생', '동북아 안보지형의 변화를 데이터로 추적하는 학생', '난민정책의 한·EU 비교에 천착하는 학생'. 어떤 정외 지망생인지를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3학년 생기부가 살아난다.

실제 합격 사례를 보면, 한 학생은 3학년 사회·문화 시간에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학급 분리수거 문제에 직접 적용해 환경 변화로 행동 변화를 이끌어냈고, 그 경험을 '리더십이란 강제가 아니라 환경 설계'라는 자신만의 정치학 명제로 정리했다. 또 다른 학생은 한미동맹과 사드를 둘러싼 군사·경제·외교의 유기적 관계를 발표한 뒤, 신문의 정치면과 국제면을 매일 챙겨 보며 자기만의 외교 노트를 만들었다.

합격생들의 독서 목록에는 윤영관의 [외교의 시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강원택의 [시민이 만드는 민주주의] 같은 책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책의 권 수가 아니라, 그 책의 한 챕터를 자기 시사 이슈에 끌어다 쓴 흔적이 보일 때 평가자의 눈이 머문다.

. 한눈에 보는 정외 3년 로드맵.
. 한눈에 보는 정외 3년 로드맵.

5. 정외로 가는 길은, 결국 '관점'을 만드는 일

정외에 가는 학생은 대부분 처음부터 정치가나 외교관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신문 한 줄에 멈춰 선 경험, 토론에서 누군가의 말에 반박해 본 경험, 친구 사이의 갈등을 조정해 본 경험. 그 모든 작은 순간들이 '관점'으로 자라난다.

따라서 오늘 신문 한 줄 읽고 끝내지 말고, 그 옆에 한 줄을 더 적어보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누가 무엇을 잃고 누가 무엇을 얻는가. 그 한 줄이 쌓여 3년이 되면, 정치외교학과의 어느 면접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만의 언어가 만들어질 것이다.

*필자 주: 위 칼럼은 서울대, 연세대,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를 합격한 학생부를 참고해 작성했다.